며칠 전 아침 기도를 하기 위해 경당으로 가던 중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여느 때처럼 서로 인사를 하고, 저는 경당으로 가고, 그 형제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형제는 간호 공부 중인데, 요즘 실습 때문에 아침 전례에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녁에나 만날 수 있는 형제이고, 아침 일찍 집을 떠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일찍 나가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를 지냈고, 저녁 식사 후 그 형제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마주치게 돼서 굉장히 기뻤다는 말과 함께. 방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잠깐 마주친 것이 그렇게 기뻤을까? 오랜만에 보는 것도 아니고, 매일 보는 사이인데..
프란치스칸으로 살아가는 길 중의 중요한 하나는 형제애입니다. 급기야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신의 공동체 이름을 '작은 형제회'로 지었습니다. 그토록 형제애는 형제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형제들 때문에 힘든 삶을 살게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형제들을 통해서 프란치스칸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형제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하지만 형제들과 함께 살다보면, 형제들 각자의 단점을 더 많이 보게 되고, 불만이 생기곤 합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매일 보는 그 얼굴들, 매일 듣는 그 목소리에, 형제들이 기쁨으로, 선물로 다가오기 보다는, 그냥 내 주위에 있는 배경으로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니 깨어 있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오셔도 우리는 오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주님께서 와 계신데도, 우리는 깨어 있지 못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형제들을 주셨다는 것은, 그 형제들을 통해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다는 것인데, 저는 어쩌면 깨어 있지 못해서, 그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고, 형제들에 대한 불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들에 있을 때, 한 사람만 데려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수도원,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면서, 똑같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누구는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누구는 불만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삶의 기쁨은, 삶의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물론 불만을 품을 정당한 이유도 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기쁨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면, 주님께서 오셨을 때의 더 큰 기쁨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 시기가 불안함으로 느껴지기보다, 간절함 속에서 키워가는 희망이 될 것입니다.
삶이 주는 작은 기쁨을 하나하나 발견해 가는 한 주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