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화
올해 초에 수련소에서 소나무를 옮겨심는 작업을 하였다.
참 감회가 새로웠다.왜냐하면 수련기 때 우리동기들이
심은 소나무 묘종을 종신하고 소임으로 와서는
다시 그것을 뽑아서 버릴것은 버리고 옮겨심을 것들은 옮겨심고,
감회가 새로운 이유가 수련기때의 추억이 떠올라서 일까?
그렇게 해서 소나무를 옮겨 심게 되었는데
어떠한 나무든지 옮겨 심을 때 중요한 것이
원례 가지고 있던 흙을 원례 자랄때 붙어있던 흙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옮겨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물을 주는 것이다.
나는 소나무를 옮겨 심는 과정을 통해서
소중한것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원례 땅에서 자라고 있던 나무가 다른곳으로
옮겨심어지기위해서 땅이 파지고 들어올려지면
그 나무에게 있어서는
스트레스이고 두려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도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
비록 땅이 파지고 뿌리째 들어올려 진다고 하여도
그 나무에게 있어서 살수 있는 방법은
뿌리에서 원례 있던 흙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꼭 붙잡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면 그 나무는 살수 있다.
사실 나무에게 있어서 흙은 생명이다.
생명 그 자체이다. 흙이 없으면 살아 갈 수가 없다.
씨앗에서 부터 시작해서 묘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무가 되어서 자라기까지
나무에게 있어서는 흙이 생명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한곳에서 안정된 곳에서
살아가다가 외부의 압박을 받게 되면
두려움이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안정되게 살아가다가
외부와 주변 환경에서의 압박과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조성되는 환경이 된다면
그래서 우리의 삶과 존재와 심지어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그 생명의 말씀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하고
붙어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 삶에서 위기스러운 삶이
닥칠때에도 우리는 살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나무에서와 같이
생명의 근원인 원례 붙어 있는 흙이
있어서 살수 가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과
생명의 말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항상 어떠한 순간에도
늘 간직하고 산다면 우리는 살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간 단식을 하시고
시장 하셨을 때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위협이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써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다.
바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말씀으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신 것이다.
나무의 뿌리에 자신 생명의 근원인 흙이 있어서
살수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도 사람으로서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실 때에 자신에게 있어서
흙과 같은 하느님께에 대한 믿음과
말씀으로 살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도 살아가게 되면 수 많은일에 있어서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럴때 우리는 하느님께에 대한 굳센 믿음과
말씀안에서 매달리고 붙어 있다면
우리는 살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에
매달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게 되고
삶을 참 행복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나무를 옮겨 심는 작업을 통해서
우리에게 진정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