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요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얘기가 넘쳐납니다.
새로운 교황님이 탄생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새 교황님이 선대 교황들보다 거침없는 행보를 하시고
많은 말을 생산해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 교황님의 그 많은 얘기를 다 기억치는 못하지만
성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곧 사제 성화 미사에서 하신
“양들의 냄새가 나는 사제가 되시오.”라는 말은 기억합니다.
<양들의 냄새가 나는 사제>
사제, 목자란 양을 치는 사람이니
양과 늘 함께 하는 목자라면 양 냄새는 당연히 나겠지요.
그러나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저만 봐도 그렇고 그래서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통하여 한 가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양이란 어떤 존재이고 목자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원칙적으로 볼 때 참 목자라면 그에게 양이 아닌 존재란 없습니다.
참 목자라면 모든 사람이 다 돌봐야할 양들입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돌보는 목자가 있습니다.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지어낸 얘깁니다.
어떤 신부가 죽어 베드로 앞에 섰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신부를 지옥행으로 판결하였는데
이에 그 신부는 왜 자기가 지옥으로 가야 하는지 물었고,
너는 사제로서 여자들과만 놀아났기 때문이라고 베드로 사도가 답하자,
그 신부는 목자가 어떻게 헐벗은 여자를 외면할 수 있냐고 답했다는 거지요.
양들을 돌보는 것이 목자인데 이 신부는 양들을 잡아먹는 목자인 것이고,
그러니까 이 신부에게서는 양 냄새가 나지만 고기기름 냄새가 나는 거지요.
욕심을 채워주고, 욕구를 만족케 하는 사람만 자기의 양인 목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목자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양은 당연히 자기의 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 목자라면 고기기름 냄새 대신 양 냄새가 나야 하고,
여인의 향기로운 향수 냄새 대신 양들의 고약한 냄새가 나야 하며
심지어 성전의 분향 연기 냄새가 아니라 양들의 퀴퀴한 냄새가 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성전을 잘 지키는 사제가 훌륭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제가 훌륭한 사제라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양들을 사랑치 않는다면
그런 사제는 참 목자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성전을 잘 지키는 사제보다
길 잃은 양들을 찾아나서는 사제를 더 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 친히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는
“목자 없이 기가 꺾인 양들과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지요.
제자들, 곧 사제 자신이 <거리의 성전>이 되라는 뜻입니다.
사제는 복음을 들고 가는 살아있는 복음이고,
사제가 양들을 위해 있는 곳이 성전이 아닐까요?
누구보다 사제인 제가 이것을 깊이 묵상해야 함을 명심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