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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 -그리스도의 오심-

by 일어나는불꽃 posted Dec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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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그리스도의 평화

 

 

 

 

 

저는 유기서원기 때 제과제빵 기술을 더 배우기 위해

 

학원과 제과점을 다닌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일찍 나가서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야 귀원을 했기 때문에

 

수도원에서 무엇을 한다는 건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에 많은 것을 했었습니다.

 

그날에도 전 독서를 하고 있었고 어느 종착역까지 읽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지체 장애인듯한 어떤 자매님이 근처 주변에서

 

혼자서 말하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전 아랑곳 하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지만 그분은 계속해서 시끄럽게 하였고 순간 전

 

화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 생각하였습니다.

 

"왜 내가 화가 나있는가?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가?

 

이 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원인이 있다면 무엇인가?? "

 

잠깐 생각하게 된 저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느 종착역까지 읽고자 하는

 

독서의 분량,, 그것을 읽고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

 

성취했을때의 기쁨에 대한 저의 욕심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이 그러한 저를 방해 하였으니

 

제가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제가 읽고자 하는

 

독서의 분량을 버렸고, 붙잡지 않았을 때 단순히 시간 되는대로

 

읽고 종착역에 내릴것을 생각하였을 때 제 마음은

 

아무런 변화없이 평화로웠습니다. 심지어 그 자매님이

 

바로 제 옆에 앉아서 시끄럽게 하는데도 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은 평화로웠습니다.

 

그 평화. 즉, 평화의 하느님께서 제 마음안에 계셨고,

 

평화의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전 욕심이라는 욕망에 가려져 전 영혼의 "장애자"

 

였습니다. 참 하느님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았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았으며,

 

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하고, 혀가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전 영혼의 "장애자"였습니다. 그러나 전 제 욕심을 포기했을 때

 

처음의 모습과 달라졌던 것이었지요. 오늘 제 1독서에서는

 

말씀에서처럼 "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비록 육신의 장애는 아닐지라도

 

제 영혼의 장애에서는 풀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평화와 평화의 하느님께서는 조건과 상황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과 저의 의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도 " 주님의 재림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해석할수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 마음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받아들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도 야고보가 말했던 것처럼

 

"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바로 내 마음안에서의 주님의 재림,

 

즉, 그리스도 오심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원망이라는 욕망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한다는 것은 어찌 본다면

 

하나의 욕심과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루고 싶은 성취감에서 오는 기쁨을 집착하고 욕심내었을 때

 

제 마음에 화가 자리잡고 있었다면 그것을 놓아 버렸을 때 바로

 

평화로움과, 평화의 하느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던것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서도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 오실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묻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례자 요한은 의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심하였기에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가렸을 것입니다.

 

뒤이어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하십니다.

 

"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의심도 하나의 욕망입니다. 참 인간 참 하느님을 가리는 욕망이

 

될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심한다고 해서 다 나쁜것은 아닙니다.

 

의심은 어떤때에는 좋은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의심을 하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식별할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의심없이 산다면

 

그것은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의심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의

 

실망감에서 부터 오는 의심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곧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분(마태 3,11-12)

 

으로 알고 기대를 하였지만 그러한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사뭇다르게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먹고 마시고 하였기에

 

기대했던 모습과는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와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가리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셨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것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다리고 있는 대림시기에 가장 먼저 우리는

 

무엇에 욕심을 내고, 집착하고

 

가리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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