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바르나바 사도에 대한 사도행전의 묘사를 읽다가
문득 어떤 사람이 복음을 잘 선포할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르나바를 착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착한 사람이기에 바르나바는 복음을 잘 선포하고 사도가 되었을까요?
착하다고 복음을 잘 그리고 열심히 선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혼자 착하게 사는 것으로 그칠 수 있지요.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꽤 있지요.
너무도 착해서 그것으로 사람들을 감화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신앙생활에 입문하기는 하지만
착한 사람이 꼭 복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착한 사람보다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복음을 잘 또는 열심히 선포할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은 선을 많이 지니고 있고 그 선을 움켜쥐지는 않아도
그 선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은 역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착한 사람은 분명 선을 많이 가지고 있고 움켜쥐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눠주려고 하지 않을 수 있고,
적어도 주지 못해서 안달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장사로 치면 착한 사람은
많은 좋을 것을 진열해놓고는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고,
스스로 누가 와 좋은 것임을 알면 그래서 원한다면 사라는 식입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지도 않고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 붙잡고 설명하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사랑 많은 사람이 선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복음을 잘 그리고 훌륭히 선포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복음은 주님의 복음이기에
은총으로 주님을 체험한 사람,
아니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
곧 주님의 성령을 체험한 사람만이 잘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기 기원이 아닙니다.
은총으로 체험한 주님이 그 복음 선포의 기원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은총은 공짜이고
높으신 하느님이 공짜로 주신 최고의 선입니다.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진 최고의 선이 바로 복음임을 믿은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바르나바 사도이고,
그 믿음 덕분에 충만한 성령의 사랑으로 복음을 선포한 사람이
또한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바르나바 사도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착한 사람도 되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되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성령의 사랑으로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바르나바 사도에 대한 사도행전의 묘사를 읽다가
문득 어떤 사람이 복음을 잘 선포할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르나바를 착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착한 사람이기에 바르나바는 복음을 잘 선포하고 사도가 되었을까요?
착하다고 복음을 잘 그리고 열심히 선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혼자 착하게 사는 것으로 그칠 수 있지요.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꽤 있지요.
너무도 착해서 그것으로 사람들을 감화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신앙생활에 입문하기는 하지만
착한 사람이 꼭 복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착한 사람보다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복음을 잘 또는 열심히 선포할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은 선을 많이 지니고 있고 그 선을 움켜쥐지는 않아도
그 선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은 역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착한 사람은 분명 선을 많이 가지고 있고 움켜쥐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눠주려고 하지 않을 수 있고,
적어도 주지 못해서 안달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장사로 치면 착한 사람은
많은 좋을 것을 진열해놓고는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고,
스스로 누가 와 좋은 것임을 알면 그래서 원한다면 사라는 식입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지도 않고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 붙잡고 설명하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사랑 많은 사람이 선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복음을 잘 그리고 훌륭히 선포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복음은 주님의 복음이기에
은총으로 주님을 체험한 사람,
아니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
곧 주님의 성령을 체험한 사람만이 잘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기 기원이 아닙니다.
은총으로 체험한 주님이 그 복음 선포의 기원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은총은 공짜이고
높으신 하느님이 공짜로 주신 최고의 선입니다.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진 최고의 선이 바로 복음임을 믿은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바르나바 사도이고,
그 믿음 덕분에 충만한 성령의 사랑으로 복음을 선포한 사람이
또한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바르나바 사도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착한 사람도 되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되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성령의 사랑으로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