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
어찌본다면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는 일이었기도 하지만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일이었습니다.
군대에 갖 들어온 저는 위병소(들어오는 부대 정문)
근무를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무서는 중에 갑자기 아랫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배탈이 난 것이었습니다.
근무를 2시간을 서야 했던 저는
이등병이라서 쉽게 말꺼내기도 어렵고 해서
그 상황을 참고 인내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깜깜한 어두운 밤이었지만
밤 하늘이 새 노랗게 되기도 하고,
새 파랗게 되기도 했으며,
또한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
별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근무를 마치고
보고를 한 다음 급히 화장실로 간 저는
그 곳은 하나의 새로운 세상과도 같았습니다.
참으로 저는 모든것을 다 잃어도 좋다는
그래서 참으로 행복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화장실이라고 하는 그곳이
더럽고 지저분하고
비 위생적인 곳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부터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화장실이라고 하는 그곳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곳이 되었습니다.
근무 설때 필요로 했던 인내가 있었기에
더러움을 더러움으로 보지 않고,
지저분함을 지저분함으로
보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어둠속에 빛이있었습니다.
밝은 대낮에 밝은 빛이 있기 보다는
깜깜한 어두움속에 빛이있었습니다.
어두움속의 빛이라는 주제를
화장실에서 겪었던 이야기로 하니
우스울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세상 모든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낮에 미리 켜놓은 간판의 불빛이
잘 보이지가 않지만 깜깜한 어두운 밤이 되면
온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야경이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 됩니다.
또한 보름달의 아름다움은 밝은 대낮에는
잘 알아볼수가 없고, 드러나지가 않으나
깜깜한 어두움이 내리면 보름달의 찬란한 빛은
너무나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지지해 주고 인정받을 때에는
내안에 현존하는 참 하느님의 빛을
잘 알아보기가 어렵지만
시련과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내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빛은
잘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듯이 어둠속의 빛은 화장실뿐만 아니라
자연의 진리이며, 이치입니다.
이것은 종교와 종파와 역사와 시대를 넘어서서도
불변함의 진리일 것입니다.
오늘 제 1독서의 말씀에서도
"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예루살렘이 빛을 비추고, 빛이 오고,
주님의 영광이 떠오르기 위해서는
어둠이 당연히 필요로 했습니다.
어둠이 없이는 빛은 비출수도 올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화장실에서 겪었던 일을 통해서
어둠과 빛을 알고 진리를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성령을 통하여
주님께서 저에게 영감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환시나 발현을 통해서 나타나셔서
가르치지 않으시기에
누구나 다 겪는 일상 안에서
사건을 통해서 사물과 자연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영감을 통해서 주
님의 거룩한 활동하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신비를 가르쳐 주시기에 우리는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계시된 신비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
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사도들의 시대에서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즉,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화장실에서도 조차 성령께서는
믿는이들의 마음속에 활동과 영감을 통하여
진리와 신비를 계시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복음에서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
밤하늘의 별을 보고 찾아 옵니다.
그런데 별은 밝은 대낮에 비추는 것이 아니라
깜깜한 어두움속에서만 빛을 비출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밝은 대낮에는 별을 볼수가 없었기에
밤이 되기 까지 기다리거나 찾아가는 도중에
헤매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어둠은 희망이었고,
찬란한 빛이었으며,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드리기 위해,
왕깨 경배 드리기 위한 목표이자 빛이었습니다.
찬란히 빛나는 왕이신 예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서는 빛이 빛이게 하는
어둠이 필요로 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내 마음안에 현존하는 예수님,
그분의 빛을 뵙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떠받들때에는
그분을 쉽게 알아 볼수도 없고
또한 찾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삶에 어려움과 시련이 닥칠때에는
우리는 그분을 간절히 바라고 찾기에
서서히 그분의 빛을 찾고 만나뵈어
경배드릴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화장실에서 있었던 그때의 일은
그때 당시에는 몰랐으나
지금에 와서 다시금 생각해 볼 때
그때는 바로 주님 공현 대축일이었습니다.
인내를 필요로하는 내 마음의 어둠을 통해서
화장실이라고 하는 더럽고 지저분한곳을
빛이 있는 그곳으로 만나뵙게한 그곳은
내 마음 안에서의 주님 공현 대축일이었습니다.
비록 전례적 시기는 달랐으나
그래도 그날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었습니다.
이제 전례적 시기로도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찬란한 빛이신 그분만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분의 빛을 빛으로 드러내게 하는
어둠도 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