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십자가의 발견 (1743)
작가: 죠반니 바티스타 티에플로(1696-1770)
크기 :486 cm 켄버스,유화
소재지 이태리 베네치아 아카데미 미술관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의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살기가 좀 나아진 유럽인들이 해외여행을 시도하면서 베네치아는 유럽인들이 동경하는 관광지가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 베네치아의 예술이 유럽에 더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시기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이룬 것과 반대로 그전까지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 경제적인 우위를 차지했던 베네치아는 교역로의 변화에 따라 무역업이 쇠퇴하면서 빈곤에 허덕이게 되는 이상 현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런 정치 경제적 몰락으로 서글픈 황혼을 맞게 된 베네치아는 그동안 축적해 둔 예술적 기량을 발휘해서 미술, 음악, 연극, 문학으로 유럽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많은 베네치아 예술인들이 외국 궁정이나 상류사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작가는 바로 이런 시대 베네치아 예술의 대표자로 활약했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가난하고 고독한 환경에서나마 베네치아가 주는 예술의 풍요로움에 눈뜨게 되어, 1716년 젊은 나이에 당시 베네치아에서 유명하던 산 로코(San Rocco) 성당에 출애굽을 주제로 한 < 홍해 바다의 기적>을 그리면서 주위의 인정을 받게 되어 활발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이탈리아 장식 회화의 장엄함과 화려함을 집대성한 것이었고, 베네치아의 선배 예술가인 베로네세(Veronese Paolo:1528- 1588)와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의 영광을 부활시켜 특히 천정에 그리는 프레스코 화법을 우아하게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는 처지가 되어 화려한 출발을 하게 된다.
1750년 작가로서의 원숙한 시기에 독일 빚즈브르크(Wurzburg) 로 가서 그곳 왕자인 주교의 요청으로 궁전에 머물며 황제 홀에 그리스 신화를 주제의 그림을 그리면서 그전의 그림에서 볼 수 없었던 빛과 환희의 폭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프레스코는 자신의 상상력과 알레고리를 최대한 융합시켜 풍요로운 삶의 환경에서만 구가할 수 있는 경쾌하고 우아한 삶에의 기쁨을 한껏 표현했다.
< 성 십자가의 발견> 그림은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예수님이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발견했다는 초대교회의 사화를 그린 것이다.
콘스탄틴 대제는 로마의 박해를 끝낸 황제로서 동방교회에선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으나, 역사적 고증에 의하면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은 죽기 직전이었기에 교회를 위해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은 과장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황제의 어머니라고 할 때 세속적 의미에선 고귀한 신분으로 여기기 쉬우나 성녀 헬레나의 처지는 달랐다. 황제의 아버지가 로마군의 장교로서 소아시아 지방을 원정 중 어느 저녁 여관에 묵게 되었는데, 유대인의 피를 받은 헬레나는 이 여관에 있던 하녀로서 장교의 아기를 가진 미혼모가 되었는데, 바로 그 아들이 황제가 됨으로서 , 자동으로 황후로 되어, 비천한 신분 출신으로 예기치 못한 행운을 얻은 셈이었는데, 성녀 헬레나가 아들인 황제와 예루살렘 순례를 결정하게 된 데는 말 못할 아픈 사연이 있었다.
이웃 나라 정복이나 다른 목적으로 자주 왕궁을 비우는 사이에 황제의 젊은 아들이 계모인 황후와 눈이 맞아 불륜에 빠진 것을 안 황제는 아들과 아내를 독살시키게 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것을 후회한 황제는 어머니를 모시고 성지에 가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기도하고 예수님의 무덤성당 건축을 위해 방문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헬레나 성녀는 예수님이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성녀는 골고타 언덕에서 세 개의 십자가를 발견했으나 , 어느 것이 주님의 것인지 몰라 깊은 기도를 바친 후 병들어 누워있는 여인을 데리고 와서 십자가를 대자 예수님의 못 박히셨던 십자가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남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공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십자가의 승리를 표현하고자 했기에 죽음의 십자가라는 인상과 전혀 다른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왼쪽 아래쪽으로부터 말을 탄 군인과, 성직자, 늙은이, 젊은이, 어린이들이 십자가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에서 십자가는 하느님 백성 전체의 구원과 직결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중앙에 붉은 옷을 입은 성녀 헬레나가 자신이 발견한 십자가 곁에 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원천인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초대하고 있다.
하늘에서는 천사들의 무리가 십자가 주위를 맴돌며 경배하면서 한 천사는 새로 발견된 십자가에 대한 경배의 표시로 향을 바치고 있다.
왼쪽 맨 위의 천사는 그리스도라고 쓰여진 팻말을 들고 새로 발견된 십자가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심을 전하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에서 십자가의 궁극적 의미, 즉 인간으로서 가장 큰 고통과 실패의 상징으로 통해 드러나는 영광과 승리를 찬란하게 강조하기 위해 십자가가 주는 어두운 인상을 제거하면서 천사들을 위시해서 모든 등장인물들을 동적으로 처리해서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십자가의 신비야 말로 크리스챤들에게 구원의 환희를 체험할 수 있는 축제 의 초대임을 매력적인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제목 : 아브라함의 영접을 받는 세 천사 (1726- 1729)
크기 : 4,000 X 2,000cm . 프레스코
소재지 : 이태리 우디네(Udine) 대주교관저
이 그림은 창세기 18장 1- 15절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야훼께서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문 어귀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웬 사람 셋이 자기를 향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문에서 뛰어나가 맞으며 땅에 엎드려 청을 드렸다.
손님네들, 괜찮으시다면 소인 곁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길어 올 터이니 발을 씻으시고 나무 밑에서 좀 쉬십시오.
떡도 가져 올 터이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뒤에 길을 떠나십시오. 모처럼 소인한테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시겠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 !그렇게 하여주시겠소?”(창세기 18: 1-5)
이것은 크리스챤이 믿는 하느님의 중요한 속성 ,즉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표현하는 것이며 크리스챤 영성의 중요 부분인 환대(Hospitality)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하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세 명의 나그네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듯이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시기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접대가 바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라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조화로운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자 했다.
작가는 먼저 아브라함을 겸손한 모습 , 즉 늙은 노인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생면부지의 젊은이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는 모습으로 그리면서 이웃사랑의 실천은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와의 관계성 즉 수직이나 종속관계가 아닌 ,오히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사람을 상전처럼 대하는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랑의 복음적 관계성을 표시하고 있다.
그 위에 있는 세 명의 천사는 신적인 권능을 가진 힘 있는 모습이 아닌 곱상한 젊은이로서 그리면서 하느님의 모습을 누구나 받아들이기 부담 없는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부각시키고 있다.
왼쪽 중간 잘려진 푸른 나무에 움트는 가지에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늙으막에 아들을 얻을 아브라함의 축복을 암시하는 것인데, 18장 1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찾아오리라 , 그때 내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품에 이사악이라는 멋진 아들을 안겨 주심으로서 믿는 사람에게 언제나 새로운 꿈과 풋풋한 희망을 선사하신 분이심을 이 나무 가지가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전체에서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하느님 신성의 표현이 우리 삶의 정황과 동떨어진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만난 젊은이 모습의 하느님처럼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인간적인 만남을 신앙으로 승화시킬 때 체험할 수 있는 것임을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례용이 아닌 대주교 관저의 장식용이긴 하나, 교회 지도자로서의 복음적 태도가 바로 섬기는 역할임을 이 작품의 성격을 통해 정확히 표현한다는 면에선 장소에 어울리는 내용이다
대주교는 자기를 방문하는 모든 신자들을 천사들을 맞는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맞겠다는 결심의 표시로 이 그림을 주문했기에 복음의 깊은 내용을 합당한 장소에 잘 표현한 셈이다.
과거 다른 작가들이 표현키 어려웠던 경쾌하고 화려한 형상처리는 유럽 왕가의 기호에 맞아 여러 왕실의 초청을 받았으며, 스페인에 가서 마지막 인생의 8년을 보내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으나 신고전주의의 탄생으로 사람들의 기호가 변하면서 작가가 주제로 삼은 희랍 신화적 환상이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되자 화려한 시작과 달리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작가로서의 삶을 마무리 하게 된다.
작가로서의 이런 생애는 우연스럽게도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와 보조를 맞추는 셈이 되었는데, 그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였으며 그의 죽음은 공화국의 몰락을 바로 앞둔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이 작품과 작가의 인생에서 우리가 꾸리기로 힘써야 야 할 멋진 삶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베네치아의 역사를 기록한 시모노 나나미는 베네치아 역사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성자(盛者)는 필쇄(必衰)”라는 역사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갯펄이라는 열악한 자연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이룬 풍요를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즐기다 천운(天運)이 다 했을 때 지는 벚꽃 처럼 산듯하게 사라진 베네치아의 역사야 말로 언젠가 한번은 떠나야 할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과거 선배들이 남긴 유산의 바탕위에 자신의 독창성을 가미한 새로운 형상미학을 창출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생기와 기쁨을 선사하면서 작가로서의 영광을 누리다 새로운 화풍이 일어나자 혼연히 영광의 자리를 넘겨 두고 떠난 티에플로의 삶과 작품은 언젠가 떠날 운명의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조그만 이익을 얻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훼절과 변절을 반복하는 추한 모습으로 살기보다 지조를 지키며 기품 있고 아름답게 살다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남이 인간다운 품위 있는 마무리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 많지 않는 성서적인 내용의 작품을 제외하고 현대인들에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여 다소 생소한 희랍신화나 환상적인 사건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을 대할 때 관객들은 비발디의 음악처럼 경쾌한 삶을 기쁨을 느끼면서 몰락의 과정에서도 서글픔이나 궁상스러운 뒷모습을 보임이 없이 밝고 당당하게 우아한 모습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베네치아인들이 남긴 지혜와 용기를 본받고픈 충동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