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가 나서서 말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부자 청년은 가진 것을 버리지 못해 주님 따르기에 실패한데 비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을 따라나선 것에 으쓱하며
뭔가 그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박해도 받을 경우 현세에서나 내세에서 보상을 받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저는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수도생활을 하는 제가 진정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진정 주님과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고 또 지금도 버리고 있는지.
제가 지금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 저절로 주님을 따르게 될까요?
세례를 받고 교회생활을 하면 저절로 주님을 잘 따르게 될까요?
수도원에 들어간 것으로 천국 가는 배를 탄 것이 확실한가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도생활이 주님을 따르는 삶인 것은 맞지만
수도생활을 해야지 그저 수도원생활을 하는 것에 그치면
수도원생활이 곧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천국행 배도 아닙니다.
수도원생활이 곧 수도생활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수도원 생활을 하지만
자기의 욕망을 따르면서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자기의 성공을 쫓으면서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수도원 담장 안에서 살아가지만
세속의 유행을 따르면서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르면서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것도 세속을 따르는 것도 아니지만
주님을 따르지 않는 수도생활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원장을 따르면서 주님은 따르지 않을 수 있고,
수도원 규칙을 따르면서 주님의 사랑의 계명은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수도원 생활을 충실히 하여
가난을 규칙대로 잘 살지만 하느님과 이웃에 봉헌된 가난이 아닐 수 있고,
원장에게 잘 순명하지만 그 순명이 주님께 대한 순명이 아닐 수 있으며,
정결하게 살지만 하느님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그리고 복음을 참되게 살아간다면
다른 것을 기대하거나 다른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의 따름의 보상이고,
하느님 나라가 우리의 복음적 삶의 보상입니다.
주님께서 진복 8단에서 말씀하시기를
영으로 가난한 사람 행복한 것은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이 행복한 것도 하느님 나라 때문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하느님 나라 때문에 행복해야 영으로 가난한 것이고,
하느님 나라 때문에 박해를 받아야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나의 추종은 누구를 따르는 추종인지,
나의 추종은 무엇을 위한 추종인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