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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죠 - 탈혼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

by 관리형제 posted Oct 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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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탈혼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
작가 : 카라바조 (Caravaggio: 1571- 1610)
크기 : 92.5 X 127.8cm (유채화)
소재지 :미국. Hartford, Wadsworth Atheneum

감성의 세계에 몰두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특성이기에 작가들의 작품 세계는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지만 여기 소개하는 카라바조 만큼 폭이 넓고 깊은 작가도 드물다.

그의 새로운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주위의 사람으로부터 극단의 경탄과 경악을 낳았으며 ,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적과 성격으로 다른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극단의 열광과 반발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밀라노 근처 조그만 마을인 베르가모(Bergamo)에서 태어나 미술수업을 하다 21세에 로마에 와서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로마의 뒷골목을 배회하면서 어려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베네치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14세에 추기경이 되어 당시 로마에서 대단한 인문주의자로서 활동하던 델 몬데( Francesco Maria del Monte, 1549- 1626) 추기경을 만나면서 그의 운명은 극적인 변화를 하게 된다.

그의 자질을 인정한 추기경의 재정적 후원과 도움에 의해 그는 일생에 가장 안락한 환경에서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고 추기경의 후광을 업고 재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었으며 이 작품은 바로 그의 행복 시절의 대표 작품이었다.

그가 살았던 16세기 후반의 이태리는 격동의 진원지였는데 ,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규탄하는 루터와 칼빈으로 시작되는 개신교 세력에 의해 교회는 북 유럽의 많은 나라를 잃고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

부패와 무능으로 복음적 생기를 잃은 가톨릭 교회를 떠나 복음의 참신함을 되찾자는 개신교 세력은 뜻있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호감과 매력을 줄 수 있었기에 요원의 불꽃 처럼 퍼지고 있었다.

여기에 대한 대응으로 자체 정화와 개신교로 넘어간 지역의 회복을 위한 목표로 교회 안에 반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시대의 교황들은 또한 예술의 정화에 착수해서 인간성 재발견의 미명 아래 교회 안에 버젓이 걸리던 나체화나 조각을 철거하고, 세속적인 주제의 풍속화나 신앙의 경건성 인도에 방해되는 그림을 철거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긴 했어도 반종교개혁 시대 교황들은 비록 좀 과격하고 시대 착오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약간의 부작용을 일으키긴 했어도 하나같이 청렴하고 교회 쇄신에 대단한 열정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이것은 미술에 뿐 아니라 성음악에 까지 확대되어 교회 전례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성음악도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 교황 마르첼로 2세는 1555년 교황이 되어 큰 개혁 의지를 펴려고 했으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불과 23일 밖에 교황직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는 성음악 정화에 대단한 기여를 하게 된다.

그는 당시 교회에서 사용되는 성음악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기량이나 과시하는 세속성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하고 당시 유행하던 폴리포니 음악이 가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당시 교황 미사에서 지휘를 맡고 있던 죠반니 팔레스트리나(Giovanni Palestrina; 1525- ?)에게 부탁했다.

교황의 명을 어기면 그의 음악 인생이 끝남을 안 팔레스트리나는 교황의 뜻에 맞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그의 천재성을 발휘해서 불과 몇 시간 만에 가사의 내용을 알아듣기 쉬울 뿐 아니라 음악 자체도 매우 거룩하고 아름다워 교황 미사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미사곡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마르첼로 교황 미사곡(Missa Papae Marcelli)이다.


카라바죠의 특징은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빛과 어둠을 극명히 구분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인데 이것은 라틴어의 어둠을 뜻하는 “ Tenebrare” 에서 유래한 것이며 스페인에서 시작된 이 기법이 작가에 와서 완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이 작품은 테네브리즘의 극치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가 시작한 이 화풍은 이태리 화단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그의 명성은 예술의 도시 피렌체를 거쳐 알프스 이북으로 올라가면서 유럽 화단으로 퍼져 나갔다. 화면의 절반이 어두운 색조로 가려지고 다른 부분은 간접광선으로 인해 밝은 색조로 드러나면서 빛과 어두움이 날카롭게 대비되는 것이 특징이다.l

작가가 이 작품을 그린 것은 교회의 자체 정화를 위해 시작된 반종교 개혁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서이다. 부패한 교회의 이미지를 극복하고 새로운 변혁을 시도하면서 교회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 안드레아 사도를 교회 성덕의 대표 모델로 부각시키게 되는데, 작가는 이런 교회의 정서에 동승해서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 외에도 두 개의 다른 성 프란치스코를 주제로 한 작품을 남겼는데, 하나 같이 해골과 몸체 없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죽음을 묵상하는 회개의 모델로서 성 프란치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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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작가의 특징인 테네브리즘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성인의 발치 부분이 어둠으로 뒤덮힌 속에 애제자 레오 형제가 숨죽이며 웅크린 자세로 탈혼에 빠진 상태에서 천사의 부축을 받고 있는 스승을 응시하고 있다. 레오 형제는 성인의 애제자임과 동시 고백사제로서 생의 많은 부분을 성인과 동반했기에 누구보다도 성인을 잘 알고 있던 측근이었다.

많은 수도회가 창설자의 시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창설자의 정신을 망각하고 그릇된 길로 걸어 쇄신이 요청되던 시대가 있었으나, 성 프란치스코는 자기 당대에 이미 형제회가 변질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형제회가 커지면서 변질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성인의 인간적인 아픔과 실망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킨 레오 형제이기에 스승이 그토록 갈망하던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한 상징인 스승의 오상은 받은 것이 그에게 큰 기쁨과 희망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레오 형제는 이 감동의 순간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스승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승리를 관조하고 있다. 그의 처지는 아직 오상을 받기 전의 스승처럼 여러 어려움과 번민에 얽힌 어둠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 인생이지만 , 밝은 빛 속에서 천사의 위로를 받고 있는 스승을 응시하면서 미래에 그에게 이루어질 그리스도를 닮을 희망을 조용히 확인하고 있다.

그는 성 바오로의 다음 말씀이 스승을 통해 확인되면서 미래에 닥칠 희망을 관조하고 있다. “눈으로 본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 조차 하지 못할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해 주셨습니다 (1코린 2, 9)”.


frf2.jpg

지오토를 위시해서 지난번 사세타의 작품에서처럼 이 주제를 다룬 여러 작가들은 세라핌 천사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오상을 받은 성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비해 , 이 작품은 오상을 받은 성인의 모습이기에 다른 작품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르다.

먼저 성인은 오상을 통해 이미 주님과 완전히 일치했기에 더 없이 평화로운 모습이다. 성인은 더 없는 충족감에 빠져 모든 것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모습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이 자기에게 박아 주신 오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여러 곳에서 오상을 받은 기록이 있으나 전기 작가들이 남자들이어서 그런지 오상을 받은 묘사는 없고 오상을 받은 후의 증언이 전부인데 비해 3세기 후에 오상은 받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여성다운 섬세한 필치로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는 키가 큰 편이 아니었고 작았으나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천사의 얼굴은 광채에 빛나고 아마도 높은 품격의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손에서 불붙은 철심을 가진 기다란 황금 화살을 보았으며 , 그가 철심으로 나의 심장을 수 차례 찔렀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대단해서 나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와 동시 무한한 달콤함을 느끼면서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으며, 이것은 바로 내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주님의 가장 감미로운 애무와 같았습니다..“

성화해설 24번에서 이태리 작가 베르니니는 성녀의 탈혼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때 성녀의 표정은 성적인 황홀경(Ecstasy)에 빠진 모습이어서 이 오상 체험은 십자가 고통의 체험을 통해 이 세상 어떤 열락과도 비길 수 없는 대단한 희열 체험임을 전하고 있다.

인간이 하느님께 깊이 몰입된 탈혼 상태의 체험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큰 기쁨이며 곧 성적인 황홀상태로 묘사될 만큼 대단한 열락의 경지에 속한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기 위해선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기에 오상을 받은 성 프란치스코의 표정 역시 해산의 진통을 끝낸 여인의 표정처럼 폭풍 같은 고통이 끝난 후 탈진 상태에서의 모습이다.

성인은 관객들에게 우리에게 너무 익은 예수 성심 상본에서 주님께서 당신 심장을 가리키고 계시듯 자기 가슴에 박힌 주님의 상처를 가리키며 “ 보라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하시며 관객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있다.


성인을 부축하고 있는 천사는 건장한 체격의 모습으로 주님 사랑에 완전히 탈진된 성인을 믿음직하게 부축하고 있다. 성인은 천사의 부축을 통해 이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하신 시편 저자처럼 하느님의 보호에 완전히 맡겨진 인간의 행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인을 부축한 천사는 오른손으로 성인의 수도복 띠를 잡고 있는데, 이 상징은 대단하다. 전통적으로 프란치스코 수도복 띠는 세 개의 매듭으로 가난, 정결, 순종의 수도서약을 상징하고 있다.

여기에서 천사가 성인의 수도복 띠를 잡고 있는 것은 성인이 오상을 받아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 살아 있는 한 모든 인간들이 시달려야 할 오욕칠정(五慾七情)의 번뇌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이다.

사부님은 오상을 가리키면서 죄인인 자기에게 내린 하느님의 큰 은총을 감사하고, 천사는 성인의 띠를 잡고 주님의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 일생을 그가 치렀던 피나는 수행을 격려하는데, 띠는 중세기에 정결의 상징으로 부각되곤 했다.

중세 교회 대 신학자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S. Thamas Aquinas)의 생애 일화에서 그가 수도자가 되고자 했을 때 귀족이었던 그의 집안 가족들로부터 대단한 반대를 당하게 되고, 성인을 타락시켜 수도자로서의 길을 꺾기 위해 그의 형 하나가 성인의 방에 창녀를 보내 강렬한 유혹을 했다.

그를 유혹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온 창녀를 본 성인은 완강히 저항하면서 몽둥이를 휘둘러 그를 내쫒자, 그녀는 유혹할 뜻을 포기하고 물러나고, 위로의 천사가 와서 성인의 허리에 띠를 띠어 주었는데, 그 후로 성인은 욕정의 유혹과 가족들의 반대에서 해방되었다는 내용이다.

천사가 잡고 있는 수도복의 띠는 성인이 오욕칠정의 심연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표시이다.

지난번 사세타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는 작은 형제회의 수도복을 입고 있으나 여기에는 다른 수도복을 입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가 수도회를 창설하고 3세기가 지났을 때 프란치스코 회는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창설자의 정신이 희석된 무기력하고 기성 수도회와 별 다를 바 없는 삼류 수도회로 떨어져 지리멸렬한 모습이 되었다.

더 이상 개혁의 힘이 없는 자기 연명 수준에 머무는 집단으로 떨어졌을 때 , 1525년 이태리 작은 형제인 마태오 다 바쉬오(Matteo da Bascio)에 의해 프란치스코회의 개혁파인 카푸친 회가 시작되면서 프란치스칸 영성이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이들은 프란치스코의 열렬한 선교 카리스마를 실천하여 실지(失地) 회복을 위해 과거 생각도 못했던 미개척지에 파견되고 엄격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열렬히 투신하자 ,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게 되면서 이상적인 프란치스칸의 모습으로 인정되고 교회는 새로 시작된 예수회와 함께 참신한 개혁 프란치스칸인 카푸친 회를 이용해서 교회 쇄신의 거대한 작업을 시작하고자 했다.

이런 영향으로 이 시대의 작품엔 모두 카푸친 수도복을 입은 성인이 나타나게 된다. 성 프란치스코는 종교개혁으로 시작되어 교회의 부패와 부정을 맹렬히 공격하는 개신교를 막기 위해 자체 정화의 목표로 시작된 반종교개혁 운동의 정신을 대변하는 성인으로 부각되었다. 작가는 바로 이런 교회 정화에 대단한 열정을 보이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교회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이 작품을 그렸다.

성인이 가르치는 오상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며. 천사가 경탄의 눈으로 잡고 있는 띠는 철저한 노력의 수행으로 얻어진 결실이기에 인간의 노력에 속한다. 작가는 바로 여기에서 당시 개신교가 오직 믿음과 하느님의 은총만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의 가치를 부정하는데 대해 당당한 도전장을 던지게 된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당시의 신학과 교회의 가르침을 극명히 표현한 신앙고백으로 볼 수 있다.

“당신들도 존경하는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은총만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한 선행의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인이 되었소.”

<허물어진 나의 집을 고치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새 삶을 시작한 성인은 오상 체험을 통해 개신교의 출현으로 허물어지고 있는 교회를 다시 일으키는 역할, 즉 <복음의 사람 Vir Evangelicus>, <교회의 사람 Vir Catholicus>으로서의 증거를 확실히 했다.

작가는 종교개혁으로 허물어진 교회를 재건할 수 있는 일꾼으로 다시 성 프란치스코를 등장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희망의 교훈을 주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암흑 속에 살고 있지만 레오 형제처럼 어둠에 쌓인 상태에서 던져지는 한줄기 빛을 통해 오상을 받은 성인이 느낀 기쁨과 희열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지고 있다.

다음에는 그가 로마의 뒷골목을 누비며 온갖 범죄에 다 연루되다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고 쫓기는 비참한 상태에서 만든 작품을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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