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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스토 디 메나부오이 - 천국

by 관리형제 posted Sep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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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천국 (Paradiso: 1376- 1378)
작 가 : 쥬스토 디 메나부오이(Giusto De Menabuoi)
소 재 지 : 이태리 파도바(Padova) 대성당

교회 역사가 길지 않는 데다 교세 성장이 빠른 우리 처지에서 교회 건축은 어쩔 수 없이 기능성의 강조가 방향이 되면서 성당이라는 것은 십자가나 성모상이 놓인 공간과 같은 무특성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밤이면 온 하늘을 수놓고 있는 어떤 교회 표지의 적십자 불꽃이 야경을 더 삭막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교회 역시 가톨릭 신앙의 유산 안에 영글어진 차원 높은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필요한 교회 건축의 참신한 안목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좋은 작품이다.

우리 교회 건축 양식 중에 세례당(Baptistery)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세례성사를 집전하던 건물이나 부속 공간을 말하며, 본래는 침례(浸禮)세례식에 사용하기 위한 큰 욕조가 있는 공간이었으나, 9세기부터 세례가 침례가 아닌 머리에 물을 뿌리는 관수(灌水)의 형태로 바뀌면서 세례당은 크리스챤 삶의 입문의 성격이 있는 세례의 특성을 표현하는 면으로 바뀌게 되었다.

파도바는 베네치아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14세기 까지 도시국가로서의 특성을 유지하다 그 후 베네치아 공국에 흡수되었으나 나름대로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곳인데, 이 곳 대성당에 있는 세례당은 세례성사의 의미성을 극명히 표현하고 있다는 면에서 걸작에 속하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세례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릅니까 ?.........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서 6: 3. 5).

어느 종교이든 입교를 약속하는 예식이 있게 마련이나 크리스챤의 세례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분의 삶에 동참하고픈 극단의 약속이기에, 오늘날에는 수도생활의 의미 역시 세례 성사의 심화(深化)로 설명할 만큼 세례는 크리스챤 삶의 시작임과 동시에 삶 전체의 여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세례당은 세례성사의 집전이 목적이기에 대부분 작은 공간이지만 작가는 여기에 신앙의 핵심과 전체를 담아서 오늘 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걸작을 창출했다.

먼저 작가는 작품의 제목을 “천국”으로 정했는데, 이것은 세례성사를 받은 크리스챤들이 삶의 여정을 거쳐 도달해야 할 도착점과 목표를 표현하는 것이다.

세례를 받으면서 크리스챤들은 인생 여정의 목표점은 하느님이 계신 천국임을 확인하며 여기에 이르고자 하는 여정이 바로 신앙생활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먼저 이곳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선택한 삶이 얼마나 멋진 삶인지의 실상을 천국의 모습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Untitled-1 copy.jpg

밀교(密敎) 계통의 불교에서 사용하는 탄트라(Tantra)를 연상시키는 원형의 중간에 천지의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오른손을 들어 세례자들을 축복하시는 모습으로 계신다.

다른 성화에 나타나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주님의 모습과 달리, 우람한 체격이 천지의 창조주다운 위엄을 갖춘 모습이며, 붉은 속옷에 걸친 하늘색 망토는 그분의 인성과 신성을 상징하며 다음 성서 말씀을 연상케 한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립비 2: 6-7)“

그러나 그분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이시기에 중앙에 위치하고 계시며 그분이 바로 만물의 시작이며 완성임을 표현하고 있다.

“하늘과 땅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신”(필립비 2: 11) 존귀하신 주님이지만 그분의 머리위엔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 그분의 권위는 세상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힘의 권위가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마지막 한 방울의 피와 물까지도 다 흘리신 사랑의 권위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분의 왼손에 잡고계신 성서에는 요한복음 8장 21절의 말씀“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으로 주님이야 말로 천국을 향한 크리스찬 여정의 인도자이시요 또한 목표점임을 제시하고 계신다.

중앙에 예수님을 세 겹의 성인들과 두겹의 천사들이 감싸고 있는데, 원의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축소되어 주님 주위엔 가장 작은 모습의 천사들이 주님을 옹위하고 있다.
마치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의 위상을 설명하는 다음 구절을 연상케 한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 져야 한다.(요한 3: 30)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옹위하고 있는 천사와 성인들의 모습은 암브로시오 사은 찬미가 (Te Deum)을 연상시키고 있다.

“찬미하나이다. 우리 천주여,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모든 천사 하늘들과 그 모든 능한 이들 게루빔과 세라핌이 끊임없이 목청을 높이어 노래 부르오니, 거룩하셔라, 거룩하셔라, 온 누리의 주 천주 거룩도 하시어라.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 그 보람 뛰어나신 선지자의 대열, 눈부시게 무리진 순교자들이 아버지를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예수님의 바로 밑 세례당의 입구가 있는 곳에 밝은 금빛 광채에 둘러싸인 성모님이 계시는데, 이것은 위치적으로 그리스도 아래라는 상징 보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시각적 효과로서 성모님은 우리 모두를 천지의 창조주이신 주님께로 인도하시는 좋은 길잡이시요, 그 돈독한 믿음으로 크리스챤들의 모델이심을 알리고 있다.

주님의 머리위에 십자가의 모습이 있는 것과 달리 성모님의 머리엔 화관이 씌워져 있는데, 그분은 비록 하느님의 피조물이지만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심으로서 “은총이 가득하시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이시며, 주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에 복된 분”(루카 1, 28. 45)이시기 때문이시다.

성모님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바깥 쪽의 35명의 성인 성녀들은 파도바 시가 특별히 공경하던 성인들(Santilogio patavino)이기에 이 작품은 파도바의 역사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보살피심과 자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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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천국을 향한 여정의 안내서로 신구약 성서를 제시하는 탁월하면서도 참신한 감각을 구사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성서 중심의 영성을 표현해서 세례당 전체를 구약의 창세기부터 신약의 묵시록 까지 전체 내용을 마치 구원을 향한 모범 답안지같이 깔끔하면서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서의 시작인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의 내용을 바로 성모님의 발 아래 그렸다. 그리스도를 향한 구원의 시작은 바로 성모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크리스챤 영성의 핵심을 바로 작품의 위치성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의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천지창조의 서곡을 아름답게 정감 어리게 표현하고 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천사들의 옹위 속에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계시며 당신이 만드신 세상을 축복하고 계신다.

하느님은 상징적인 의미로 6일 동안 창조사업을 마치시고 7일째 되시는 날 쉬시면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기 1, 12. 18. 21. 25. 31).는 창세기의 말씀처럼 흐뭇하고 시원한 모습으로 계신다.

이렇게 흐뭇하신 하느님께서 만드신 땅은 일곱 색깔의 무지개안에 들어 있는데, 이것이 중세기 대지에 대한 개념이었다. 무지개는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 하느님께서 인간과 계약을 맺으시고 축복하신다는 내용이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새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창세기 9: 12)

작가는 세상이야 말로 하느님의 보호와 축복 속에 하느님이 창조하신 후 흐뭇해하신 피조물이 거처하는 복된 땅이란 세상살이의 긍정적인 차원을 제시하고 있다.

무지개 밖으로 짙은 청색의 띠 안에 여러 동물의 형상이 있는데 , 이것은 오늘 까지도 점성술이나 다른 여러 것에 영향을 주고 있는 십이궁도(十二宮圖: Sign of Zodiac)이며, 세상 만물이 하느님의 섭리안에 살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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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창세기 2장의 하느님의 인간창조의 내용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창세기 2, 22).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 내용을 작가는 자신의 신앙을 담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성부와 성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데, 위의 성부께서는 아담의 분신으로 하와를 창조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린이처럼 알몸으로 평안히 잠든 아담의 가슴에 손을 얹은 하느님께서는 그의 외로움을 덜어줄 동반자로서 하와를 창조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데, 이것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창세기 2장 18)는 당신의 인간에 대한 가없이 깊고 자상한 사랑의 표현인데, 여기 성부로서의 하느님의 표정과 손길은 천국에 나타나고 있는 천지의 창조주로서의 위엄이 아닌 어머니의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표정이시다.

그 아래는 하느님께서는 후광에 십자가가 새겨진 성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당신이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에게 가서 잠자고 있는 하와를 일깨우시는 모습이다. 이것은 성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는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미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님은 로마서에서 아담의 불순종에 의해 세상에 죄가 왔다는 것과 달리 하와를 일으키시는 것은 아담 범죄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하와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하와를 일으키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서 5: 19).라는 구원자로서의 주님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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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연작으로 창세기의 중요 사건 인간의 범죄, 낙원에서의 추방(창세기 3장), 카인과 아벨(창세기 4장)의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하와의 유혹에 빠져 금지된 과일을 먹기 전의 원조들은 창조의 모습처럼 깨끗하고 자연스러우나 그 옆에 과일을 먹음으로 범죄한 원조들은 아랫 부분을 가리며 수치와 불안의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 위에 하느님께서는 잘 관찰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앉아 계신다.

그 아래 추방되는 아담과 하와는 “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창세기 3: 21) 는 말씀대로 옷을 입은 채 “빨리 낙원을 떠나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하며 칼을 휘두르는 천사를 피해 정신없이 도망 치고 있다. 그 옆에 창세기 4장에 나타나고 있는 이들이 낳은 카인과 아벨이라는 형제가 만드는 피로 얼룩지는 역사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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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에 있는 세례당은 대성당에 부속된 조그만 건물에 불과하나 작가는 이 내부 전체를 창세기에서부터 묵시록 까지 중요한 사건들을 그림으로서 세례 받는 사람들에게 크리스챤의 고향은 바로 하느님과 성인들이 계신 천국이기에 여기에 이르기 위해선 이제부터 성서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하면서도 매력적으로 전하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더 소개하겠지만 작가의 마지막은 창세기 시작에 나타나고 있는 천지의 창조주로서의 하느님께서 묵시록 1장 8절의 말씀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묵시록 1, 8)라고 적힌 성서를 들고 열두 사도들의 옹위속에 세상을 축복하시는 장면으로 끝내고 있다.

교회역사에서 동방교회와의 견해 차이로 오늘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지닌 개신교도처럼 성상파괴 운동이 일어났을 때 성서에 대한 탁월한 혜안을 지니셨던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580- 640)은 종교적 이미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성서: Biblia pauperum” 즉 “글을 읽을 수 없는 자들을 위한 성서”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성미술의 가치를 옹호하신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 교황의 견해를 너무도 극명히 표현하면서, 오늘날에도 성서적 신앙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설득력을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항상 그렇듯 겉으로 보면 너무 수수하다 못해 초라하게 보이는 성당 안에 들어가면 엄청난 신앙의 유산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파도바 대성당의 작은 세례당안에 있는 작품들은 마치 보석상자안의 보물처럼 관람자들의 마음을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르면서 맑고 황홀한 천국에의 그리움을 키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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