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는 진정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주님 말씀대로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나라를 봐도 눈먼 이가 나라를 이끌고 있고,
우리 사회나 우리 공동체를 봐도 눈먼 이가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바로 이 눈먼 지도자들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말씀은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눈먼 지도자를 갈아 치라는 말씀입니까?
눈먼 지도자를 갈아 치고 눈뜬 지도자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눈먼 지도자들이 눈을 떠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 눈 뜨라는 말씀이지요.
어떻게 눈을 뜨는 것입니까?
개안 수술을 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개안 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개안 수술이 뭣인지 보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욕심을 우리 마음에서 도려내야 하는데,
이는 마치 흐려진 수정체를 수술하는 백내장 수술과 같습니다.
우리말에 돈에 눈이 멀고, 욕심에 눈이 먼다고 하는데
바로 우리 마음에서 욕심을 도려내야 제대로 보입니다.
왜냐면 욕심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그것만 보고
그것 밖에는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낼수록 그것을 집착을 하고
집착을 하면 집착하는 것만 뚫어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눈이 먼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이 들어간 잘못된 사랑을 하면 애착이 생기고,
물건이건 사람이건 애착을 하면 애착하는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서 욕심을 걷어내고
사랑에서 애착을 걷어내야 제대로 보입니다.
다음은 교만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말에 교만한 사람을 빗대어 눈에 뵈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교만을 제거하는 것은 마치 시신경치료를 하는 녹내장 수술과 같지요.
백내장 수술에 비해 더 근본적이고 더 치료가 어렵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왜 더 근본적이고 더 치료가 어렵냐 하면
욕심이 자기 밖의 그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이기에
백내장처럼 집착하는 그것을 제거하기만 하면 되지만
교만은 자기에 대한 집착이고, 그래서 자기밖에는 없는 것이기에
자기를 제거하는 것이 자기 밖의 것을 제거하는 것보다 당연히 어렵지요.
아무래도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보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두 가지 길을 주님께서는 복음에서 제시하셨지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주님을 따름과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을 말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건 남을 인도하기 위해서건
가진 것도 버려야 하고 자기도 버려야 하지만
자기를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두 가지를 다 버려야 맑은 눈으로
주님도 잘 따라가고 다른 사람도 주님께 잘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