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들은 것 같이 파견된 제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짧은 내용의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황한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마음먹는 내용보다 중간 부분 내용에 집중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은 이들 중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소문만 듣고 확인하지도 않은 일을 자신들만의 생각, 시각으로 판단합니다.
어쩌면, 예수님과의 만남이 부정적인 결말로 끝날지라도 헤로데는 직접 만나서 확인이라도 하려고 했으니 그나마 나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 내용과는 달리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헤로데도 소문을 듣고, 세례자 요한이라고 단정합니다.
오늘 복음 내용처럼 우리는 확인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남의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칭찬이나 좋은 내용보다는 흉을 보거나 트집을 잡는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지요.
특히, 요즈음은 가까운 이들만의 입방아로 끝나지 않고, 인터넷이나 SNS 등 파급력이 큰 매체에까지 올라 그 확산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도 합니다. 몇 년 전, 근거 없는 소문과 악성 댓글로 고통을 받다가 자살에까지 이른 여자 연예인들 사례는 그 폐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꼭 수도원 밖에서만의 이야기일까요?
저 자신도 다른 형제들을 대상으로 도마에 올려놓듯 흥미 위주로 이야기했음을 반성합니다.
청원기 여름 체험 당시, 제주 글라라 수녀원에서 한 자매님이 해 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다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 TV 프로그램, 사회, 정치 등 ….
형제, 자매간의 대화 주제는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가 중심이 되거나, 하느님 이야기로 발전이 된다면 좋을 텐데요.”
사부님의 <권고 20>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쓸모없고 헛된 말들을 즐겨 하고, 또한 그것들로 사람들을 웃기려는 그런 수도자는 불행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어설픈 추측으로 남을 판단하고, 흥미 위주의 실속 없는 시간 때우기식 잡담은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 앞에서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게, 또한 진솔한 마음으로 자신을 열어 보이는 대화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 상대가 하느님이라면 더 자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함이 우리 생활에 가장 중요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떠도는 소문이나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에 더 집중하여 몰입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