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납시다.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가
가을이라고 노래한다.
올 여름엔 배고픔 못지 않게 가을의 굶주림이 절박했었다.
들녘엔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고 긴 묵상에 들어갔다.
여름의 폭염이 사라진 선선함이 냉쾌하다.
가을에 만납시다.
그리움의 계절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다.
공연히 슬퍼지기도 하고
가슴이 아련하게 아프기도 하다.
누구와도 약속한 적이 없고
단지 가을을 기다리기만 했던 것일까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대지에 안개비가 내린다.
비가 그치면 유리창엔 '가을'이라고 써 있을 것 같다.
여름을 보내는 마음보다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이 급하다.
난 가을이 좋다.
수취인이 없어도 편지를 쓰고
빈 가슴을 채워 줄 사람이 없어도
그리움을 담아놓을 그릇을 마련하고 싶다.
진홍의 가을이 그립다.
가을에 만납시다.
가을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