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사의 도움을 받는 성 프란치스꼬( 1603년)
작가 :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 Orazio Gentileschi 1563- 1639)
크기 : 켐버스 유채 :126X 98cm
소재지 :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Prado) 미술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격언이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이 되고 있다.
교황님이 외국을 방문할 때 공식 행사처럼 정착된 것이 성직자들의 비행에 대한 사과와 그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년전 시사 주간지 타임(Time)지는 성직자들이 연루된 사건 관계로 곤혹에 빠진 북미 교회의 모습을 전하면서 , 오늘 가톨릭 교회가 말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후 가장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일리가 있는 표현이다.
교회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재출발하는 결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에 교회사안에서 이런 처지에서 있었던 좋은 모델이 바로 이 작품안에 들어 있다.
이 작품은 교회의 부패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말틴 루터의 종교 개혁 후 가톨릭 교회가 자신의 잘못을 통감하면서 자정(自淨)의 목표로 시작한 반종교개혁 (Counter - Reformation) 운동에 동참했던 작가의 작품이다.
교회가 부패의 수렁에 빠져 있는 내부를 정화하면서, 복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한 이 운동엔 당대 많은 예술가들이 동참했으며 작가도 그중에 한명이었다.
작가 외에도 스페인의 엘 크레꼬 (El Greco : 성화해설 25) 이태리의 카라바죠( Caravaggio: 성화해설 67) 등 여러 작가들이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목적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성 프란치스꼬는 중세기 성인으로서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셨기에 자연스럽게 개혁의 모델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도회가 회원들이 늘어나 대형화 되면서 창설자의 정신은 빛을 잃고 안일에 빠져 복음적 생기를 잃게 되던 차 창설자의 정신에 철두철미 투신하고자 하는 새로운 개혁 세력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카푸친(Capuccino)형제들이다.
이 개혁운동은 1525년 마태오 다 바쉬( Matteo da Basci : ?- 1552 )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교회안의 여러 개혁 운동이 다 그렇듯 처음에는 수도회로부터 엄청난 반대와 박해를 받으면서도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말 못할 어려움과 반대를 겪으면서도 그들의 맑고 순수한 열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카푸친 형제들은 예수회와 더불어 새로운 선교지 발견과 프란치스칸 영성의 기본인 관상과 선교활동을 지혜롭게 조화시킨 생활로 교회 안에 엄청난 영적 활력을 줄 수 있었다.
작가는 성 프란치스꼬를 너무 좋아했기에 이 작품 외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으며 성 프란치스꼬에게 긴 고깔이 있는 카푸친 수도복을 입혔다.
작가의 판단으로는 카푸친이 가장 프란치스꼬의 정신에 투철한 제자단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인물 중 가장 예수를 닮은 인물로 평가되는 성인은 말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같은 오상을 스스로 주님께 요청해서 받았다.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어느 날 성인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첬다.
"주 예수님,
비오니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기도를 들어 주소서 .
첫째 , 극심한 수난 때에 , 착하신 예수님, 당신께서 겪으신 그 고통을 될 수 있는 한 저 또한 영혼과 육신 안에 겪게 하소서.
둘째 죄인인 저희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이 그토록 큰 고난을 기꺼이 겪으실 만큼 불타오른 저 위없는 사랑을 제 마음 안에서도 느끼게 하소서 ."
주님은 당신 삶의 핵심 즉 인류에의 사랑을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표현한 십자가의 신비를 궤뚤어 이해한 프란치스꼬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그에게 자기가 받은 것과 같은 오상(五傷)을 박아 주셨다.
주님이 받으셨던 다섯 상처를 몸으로 받은 성 프란치스꼬는 몸과 탈진한 상태에서 무아경에 빠져 있다.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나누었다는 감동에 심한 충격과 감격을 느껴 무아경에 빠진 프란치스꼬를 그의 수호 천사가 부축하여 위로하고 있다.
오상은 그에게 있어 극히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귀부인의 십자가 목걸이가 아니라 주님 수난의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감동적인 체험의 한 부분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성 프란치스꼬의 손에 있는 조그만 못자국은 보이나 핏빛도 아닌 보통 색깔로 표현하면서 오상이라는 신체적 고통의 강조 보다는 그가 격어야 했던 심리적인 고통을 더 강조하기 위해 고뇌에 찬 탈진한 모습을 더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 올리브 동산에서 겪으셨던 체험과 연결되고 있다.
작가는 오늘날에도 성 프란치스꼬는 그리스도를 가장 닮은 성인으로 평가되는 것 처럼 나름대로 주님의 올리브 동산의 체험과 오상 체험을 연결시킨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그분의 기분을 북돋아 드렸다."(루까 22: 42- 44)
이런 면에서 작가는 이 작품이 단순한 성화가 아니라 강한 교훈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노력하는 교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나름대로의 시대 상황에 어울리는 복음선포로 볼 수 있다.
빛과 어둠의 마술사로 평가되는 카라바죠 화풍을 이어받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서의 빛과 어둠의 체험을 너무도 정확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프란치스꼬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어둠에 싸여 있다.
이것은 성인이 겪어야 했던 영적인 어둠을 표현하고 있다.
빛을 향한 어둠이요 , 희망을 거슬러 희망하는 (Contra spem , in spem) 그리스도의 정확한 분신의 모습이다.
또한 이것은 오늘도 많이 퍼져있는 성 프란치스꼬의 왜곡된 모습에 대한 강한 반발의 성격을 띄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꼬를 너무 낭만적이 아니면 이상주의자로 표현하고 있다.
새들과 이야기 하고 , 사나운 늑대를 길들이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현실적인 삶의 책임엑서 면제된 그런 책임 없는 자유인의 모습이다.
맨발의 성자가 아니면 봉두난발에 비오는 진흙길을 딩구는 기인(奇人)의 현실성이 배제된 성인상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성인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냉엄한 현실 앞에서 너무도 많은 고뇌를 했던 분이셨다.
기절 상태의 성 프란치스꼬를 감싸고 있는 어두움과 무거움은 성인이 겪으셨던 이런 현실적인 고뇌를 표현하고 있다.
성인은 말년에 자기 형제들로부터 반대를 받으면서, 자기의 이상이 실패로 가고 있다는 강한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성인은 오상을 받으면서 자기의 이상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여정을 따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오상의 고통과 충격으로 기절 상태에 빠져 있는 성인을 천사가 부축하고 있다.
천사는 전통적인 회화에서 나타나는 모습대로 날개를 달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였던 쿠르베(Gustave Gourbet: 1819- 1877)는 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천사를 본적이 없기에 그릴 수가 없다 ,"
성서에 여러 곳에 천사에 대한 언급이 있으나 , 천사는 철저히 영적 존재이기에 그 모습을 상상 할 수는 없으며 현재 천사의 모습은 철저히 서구 문화 예술의 영향이다
6세기 초에는 디오니시오 성인이 성서에 나오는 천사들 이름을 이용하여 구품(九品) 천사 계보를 만들었다.
그가 구분해놓은 천사 품은 세라핌 ,케루빔, 좌품 ,권품 ,능품 ,역품 , 주품 ,대천사 천사의 아홉 등급이며 프란치스꼬 전기에 나타나는 천사는 세라핌 천사라고 되어있다.
천사의 역할을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인간을 보호하고, 악을 무찌르는 역할인데, 여기에 나타난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탈혼에 빠진 프란치스꼬를 위로하는 모습이다.
오상을 받은 성 프란치스꼬는 탈진 상태에서 천사의 부축을 받고 있다.
천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그의 안쪽은 빛이 전혀 비치지 않는 어둠의 모습이며 이것은 오상을 받은 프란치스꼬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프란치스꼬를 부축하고 있는 천사의 오른 손목을 더 없이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천사의 팔목은 가냘프게 보이는 천사의 몸짓과 달리 튼튼한 장정의 팔목처럼 힘 있어 보인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굳센 능력으로 프란치스꼬를 보호하고 지키신다는 표시이다.
그리스도의 오상을 받음으로서 더 없이 허탈한 그의 마음에 하느님께서 위로의 천사를 보내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처럼 새 생명으로 다시 일어나리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천사의 힘찬 팔목에 쏟아지고 있는 빛은 하느님께서 프란치스꼬에게 약속하신 희망의 상징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을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 12)
예기치 못했던 어려움 앞에 프란치스꼬가 좌절했던 이상은 그리스도의 고통과 일치하는 오상 체험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 승리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일부분의 어두움이긴 해도 엄연한 어두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에 중대한 희망의 메세이지를 던지고 있다.
프란치스코에게 오상을 주시며 지켜주신 주님께서는 자신의 약점속에서도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희망으로 현존하고 계신다.
"내가 세상 끝날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 20)
감사히 옮겨가지요.
그런데 아무리 헤아려도 여덟 등급이네요.
빠진 등급을 알려 주세요.
http://blog.hani.co.kr/nomusa/3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