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6,3) 성서본문: 요한16,12-15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해서 기묘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당신을 그분의 아들이라 하시고,
또 당신이 죽으신 후에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성령이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근데, 이 세 분이 너 따로 나 따로 놀지 않고
늘 한 통속이 되어 같이 행동하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볼까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요한14,7)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요한14,11)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할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요한14,16-17)
진리의 성령께서는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16,14)
이런 말씀을 종합해 볼 때, 하느님 안에는 세 분의 위격 즉 아버지, 아들, 성령이 계시고,
이 위격은 하나로 행동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위격이란 말은 인격이란 말과 동의어입니다.
위격은 고유한 것이고,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실재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다 고유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위격들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아들과 성령을 파견하십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고, 이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이끄십니다.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고, 아들이 이룩한 구원의 업적을 완성에로 이끄십니다.
하느님의 위격들은 이러한 일을 독자적으로 하시지 않고,
즉 너 따로 나 따로 하시지 않고, 늘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우주를 창조하실 때, 아들과 성령은 조수 역할을 하고,
아들이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실 때, 아버지와 성령도 함께 밀고 당기는 역할을 하고,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이 계획하신 뜻을 완성하실 때, 아버지와 아들도 협력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으며,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 안에 계시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호내재, 상호삼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셋이면서도 하나요, 하나면서도 셋이 됩니다.
옛날부터 학자들은 하느님의 신비인 하나에서 어떻게 셋이 되고, 또 셋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를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에서 셋이 되는 연유는
하느님 안에 사랑이라는 핵폭탄이 장착되어 있어
이것이 처음부터 폭발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태초부터 아버지가 계셨지만, 사랑의 핵폭탄이 터지면서 아들이 생기게 되었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터지면서 성령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사랑자체이신 아버지가 계셨는데, 사랑이 터지면서 사랑받는 아들이 생기게 되었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결실로서 성령이 생기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셋이 하나가 되는 연유는
하느님 안에는 상호내재, 상호삼입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친밀하고, 얼마나 내밀한 사랑의 관계인지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를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바탕으로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하나이면서 셋이요, 셋이면서 하나라는 신비체입니다.
좀 어려운 이론입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다음과 같은 삼위일체 하느님 신앙을 가집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인류를 위해서 아들 하느님과 성령 하느님을 파견하십니다.
아들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치욕으로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치루어 구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분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뒤에 성령께서 파견되셨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일을 하십니다.
성령은 사람들 가운데 머무시면서 사람들을 진, 선, 미로 이끌어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활동에 아버지와 아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바람처럼 신비하게 느껴지고, 샘물처럼 시원하게 느껴지고,
성령은 불길처럼 뜨겁게 느껴지고, 비둘기처럼 자유롭게 느껴집니다.
성령은 우리의 들숨과 날숨 안에 현존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느끼고 감지하고 전율하고 감격하고 있습니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데,
그것을 모른다면 신앙생활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숨을 쉬면서, 그 숨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성령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쐬면서 숨어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면서 숨어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뜨거운 불길을 보면서 숨어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비둘기나 새들을 보면서 숨어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도처에 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다 성령 하느님의 발자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천지만물에게서 하느님의 기운과 숨결을 느껴야 합니다.
아멘. 얼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해서 기묘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당신을 그분의 아들이라 하시고,
또 당신이 죽으신 후에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성령이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근데, 이 세 분이 너 따로 나 따로 놀지 않고
늘 한 통속이 되어 같이 행동하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볼까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요한14,7)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요한14,11)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할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요한14,16-17)
진리의 성령께서는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16,14)
이런 말씀을 종합해 볼 때, 하느님 안에는 세 분의 위격 즉 아버지, 아들, 성령이 계시고,
이 위격은 하나로 행동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위격이란 말은 인격이란 말과 동의어입니다.
위격은 고유한 것이고,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실재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다 고유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위격들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아들과 성령을 파견하십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고, 이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이끄십니다.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고, 아들이 이룩한 구원의 업적을 완성에로 이끄십니다.
하느님의 위격들은 이러한 일을 독자적으로 하시지 않고,
즉 너 따로 나 따로 하시지 않고, 늘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우주를 창조하실 때, 아들과 성령은 조수 역할을 하고,
아들이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실 때, 아버지와 성령도 함께 밀고 당기는 역할을 하고,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이 계획하신 뜻을 완성하실 때, 아버지와 아들도 협력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으며,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 안에 계시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호내재, 상호삼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셋이면서도 하나요, 하나면서도 셋이 됩니다.
옛날부터 학자들은 하느님의 신비인 하나에서 어떻게 셋이 되고, 또 셋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를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에서 셋이 되는 연유는
하느님 안에 사랑이라는 핵폭탄이 장착되어 있어
이것이 처음부터 폭발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태초부터 아버지가 계셨지만, 사랑의 핵폭탄이 터지면서 아들이 생기게 되었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터지면서 성령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사랑자체이신 아버지가 계셨는데, 사랑이 터지면서 사랑받는 아들이 생기게 되었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결실로서 성령이 생기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셋이 하나가 되는 연유는
하느님 안에는 상호내재, 상호삼입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친밀하고, 얼마나 내밀한 사랑의 관계인지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를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바탕으로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하나이면서 셋이요, 셋이면서 하나라는 신비체입니다.
좀 어려운 이론입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다음과 같은 삼위일체 하느님 신앙을 가집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인류를 위해서 아들 하느님과 성령 하느님을 파견하십니다.
아들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치욕으로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치루어 구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분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뒤에 성령께서 파견되셨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일을 하십니다.
성령은 사람들 가운데 머무시면서 사람들을 진, 선, 미로 이끌어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활동에 아버지와 아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바람처럼 신비하게 느껴지고, 샘물처럼 시원하게 느껴지고,
성령은 불길처럼 뜨겁게 느껴지고, 비둘기처럼 자유롭게 느껴집니다.
성령은 우리의 들숨과 날숨 안에 현존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느끼고 감지하고 전율하고 감격하고 있습니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데,
그것을 모른다면 신앙생활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숨을 쉬면서, 그 숨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성령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바람을 쐬면서 숨어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면서 숨어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뜨거운 불길을 보면서 숨어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비둘기나 새들을 보면서 숨어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도처에 계시는 성령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다 성령 하느님의 발자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천지만물에게서 하느님의 기운과 숨결을 느껴야 합니다.
아멘.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