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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흑인 이주 시리즈( The migration series: 1941)
작가 제이콥 로렌스 (Jacob Lawrence : 1.917- 2.000)
크기 : 목판 12X 18 inch : 60장
소재지 :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
현대에서 교회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 "현대 세계 사목 헌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
진실로 인간적인 것이라면 신도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신도들의 단체가 인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1항)
작가는 지난 세기를 산 미국의 흑인 작가로서 크리스챤들의 잘못으로 시작된 흑인 노예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해결을 미술적으로 접근해서 문제 해결의 밝은 차원을 제시했다.
작가는 여느 흑인들 처럼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부 뉴저지에서 많은 자녀를 둔 이혼한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일기 시작한 남부 흑인들의 대규모 북부로 이동을 따라 북부 뉴욕에 정착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처지에서도 자녀의 교육에 대단한 관심이 있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흑인 밀집 지역인 할렘에 있는 예술학교에 등록해서 공부했다.
학교를 마친 16세 때 부터 세탁소 인쇄소를 전전하면서도 예술에의 꿈을 접지 않고 지내던 중 , 그의 탁월한 자질을 인정한 스승을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구축한 화풍을 " 역동적 큐비즘"으로 정해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이 화풍은 르네상스나 인상파 같은 아름다움의 묘사에 비중을 두는 시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생경스러운 것이다.
큐비즘이란 20세기 초기에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운동으로 .기존 미술의 기본이었던 의 원근법과 명암법,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 등을 파격적으로 지양하고,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본 뒤에 부분 부분의 모양을 분석하고 그 구조를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다시 구성하여 새로운 미의식을 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술 운동을 말한다.
작가는 불과 23세의 나이에 자신의 기원인 흑인 문제에 접근해서 60장의 연작품을 제작했는데, 이것은 아직 흑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던 미국사회에 흑인 문제의 정확한 이해에 있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 흑인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 문제작이 되었다.
작품의 내용은 미국의 흑인 역사이며 배경은 1차 대전 후 1911년부터 1917년 사이 미국사회의 변화에 의해 남부를 거점으로 살던 흑인들 10 만명 이상이 살길을 찾아 북부로 이주한 흑인 대이동의 역사를 담고 있다.
1차 대전이 터지면서 미국에 노동력을 제공하던 많은 해외이민들이 안전을 찾아자기들의 고국으로 돌아가자 ,미국 북부의 산업시설들은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을 느끼게 되었고 , 이 노동력의 공간을 메우기 위해 북부 기업주들이 교통비를 부담하면서 까지 남부 흑인들을 불러 모우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흑인들의 본거지였던 남부는 목화의 흉작이 계속되는 처지에서 그들의 삶은 더 비참하게 가난했다.
이런 처지에서 남부에서 굶어죽기 보다 살기 위해서는 생판부지의 북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재촉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렵지만 그들이 정붙여 살던 고향 남부에는 흑인에 대한 개인적 폭력사고가 계속 발생하게 되었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항상 어떤 희생양을 만들어 그들에게 분풀이를 하는 인간들의 악성을 이 지역 주인들인 백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던 흑인에게 돌려 흑인들을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았다.
구약성서의 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인도로 이짚트를 탈출하는 이스라엘인들의 여정이 재현된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쫒기듯 북부로 온 흑인들에게 마땅한 직장이 있을 수 없고 그들을 기다리는 일터는 백인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위험하고 박봉인 철도 노동자라는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살아남기 위해 이것을 받아들이면서 남부와 또 다른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열악한 작업 환경 보다 더 서글픈 것은 이들은 남부와 또 다른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갑자기 들이 닥친 흑인들의 문화에 대해 전혀 이해가 부족한 북부의 백인들은 얼마 전까지 남아프리카 일부에서 있었던 인종 분리 정책을 실시해서 식당이나 버스같은 곳에 흑인 백인의 좌석을 구분하며 차별을 했다.
크리스챤 국가인 미국에서 흑인을 노예로 만들어 갖은 학대를 다 한 백인들은 그들 선조들의 잘못을 조금도 반성하지 못하고 선조들이 해오던 비크리스챤적인 악행을 계속한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개신교도들 , 특히 영국 개신교도들의 이민으로 시작된 나라이기에 WASP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백인 신교도의 나라이나 예배때 마다 반복하는 회개의 복음보다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공적으로 차별하는 위선을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보이고 있다.
이런 고통의 연속인 삶에서 흑인들의 유일한 위안처는 바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교회였다.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은 서로 형제라고 가르치는 백인들이 자기들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암담한 현실에서도 하느님만은 어떤 처지에서도 자기들을 사랑하신다는 믿음이있기에, 교회는 이들에게 지치고 실망한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교회에 모인 흑인들은 시편 23편을 외우며 기도할 때 마다 백인사회에서 받아야 했던 불안이 평화로, 슬픔이 기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며 고통의 연속인 삶의 현장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재충전할 수 있었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몸 뉘여 주시고 고이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돋아라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앞에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 하느님은 우리 힘 우리 숨는 곳 어려운 고비마다 항상 구해주셨기에,
설령 땅이 뒤흔들린단들 산들이 해심으로 빠져 들단들
우리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 (시편 46)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한 20년이 지나서야 백인과 흑인 사이에 아무런 벽이 없는 복음적 이상이 말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 1929- 1968)목사의 노력에 의해 실현되었다.
작가는 흑인 인권과 해방이라는 이 시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 작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하느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형제적 인간 관계가 차별이라는 비복음적인 것으로 왜곡된 현실에서 예술을 통해 이것을 지적하고 고발함으로서 미국 상황에 꼭 필요한 복음적 가치를 예술을 통해 표현했다는데 대단한 의미성이 있는 작가이다.
예술의 표현이 아름다움에만 안주하지 않고 진실 표현으로 나아가야 할 사명이 있다면 이 작가는 작품을 통해 복음을 선포한 작가였다.
이런 면에서 예술은 세상의 복음화에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작가는 증명했다
제목 : 흑인 이주 시리즈( The migration series: 1941)
작가 제이콥 로렌스 (Jacob Lawrence : 1.917- 2.000)
크기 : 목판 12X 18 inch : 60장
소재지 :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
현대에서 교회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 "현대 세계 사목 헌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
진실로 인간적인 것이라면 신도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신도들의 단체가 인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1항)
작가는 지난 세기를 산 미국의 흑인 작가로서 크리스챤들의 잘못으로 시작된 흑인 노예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해결을 미술적으로 접근해서 문제 해결의 밝은 차원을 제시했다.
작가는 여느 흑인들 처럼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부 뉴저지에서 많은 자녀를 둔 이혼한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일기 시작한 남부 흑인들의 대규모 북부로 이동을 따라 북부 뉴욕에 정착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처지에서도 자녀의 교육에 대단한 관심이 있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흑인 밀집 지역인 할렘에 있는 예술학교에 등록해서 공부했다.
학교를 마친 16세 때 부터 세탁소 인쇄소를 전전하면서도 예술에의 꿈을 접지 않고 지내던 중 , 그의 탁월한 자질을 인정한 스승을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구축한 화풍을 " 역동적 큐비즘"으로 정해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이 화풍은 르네상스나 인상파 같은 아름다움의 묘사에 비중을 두는 시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생경스러운 것이다.
큐비즘이란 20세기 초기에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운동으로 .기존 미술의 기본이었던 의 원근법과 명암법,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 등을 파격적으로 지양하고,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본 뒤에 부분 부분의 모양을 분석하고 그 구조를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다시 구성하여 새로운 미의식을 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술 운동을 말한다.
작가는 불과 23세의 나이에 자신의 기원인 흑인 문제에 접근해서 60장의 연작품을 제작했는데, 이것은 아직 흑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던 미국사회에 흑인 문제의 정확한 이해에 있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 흑인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 문제작이 되었다.
작품의 내용은 미국의 흑인 역사이며 배경은 1차 대전 후 1911년부터 1917년 사이 미국사회의 변화에 의해 남부를 거점으로 살던 흑인들 10 만명 이상이 살길을 찾아 북부로 이주한 흑인 대이동의 역사를 담고 있다.
1차 대전이 터지면서 미국에 노동력을 제공하던 많은 해외이민들이 안전을 찾아자기들의 고국으로 돌아가자 ,미국 북부의 산업시설들은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을 느끼게 되었고 , 이 노동력의 공간을 메우기 위해 북부 기업주들이 교통비를 부담하면서 까지 남부 흑인들을 불러 모우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흑인들의 본거지였던 남부는 목화의 흉작이 계속되는 처지에서 그들의 삶은 더 비참하게 가난했다.
이런 처지에서 남부에서 굶어죽기 보다 살기 위해서는 생판부지의 북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재촉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렵지만 그들이 정붙여 살던 고향 남부에는 흑인에 대한 개인적 폭력사고가 계속 발생하게 되었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항상 어떤 희생양을 만들어 그들에게 분풀이를 하는 인간들의 악성을 이 지역 주인들인 백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던 흑인에게 돌려 흑인들을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았다.
구약성서의 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인도로 이짚트를 탈출하는 이스라엘인들의 여정이 재현된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쫒기듯 북부로 온 흑인들에게 마땅한 직장이 있을 수 없고 그들을 기다리는 일터는 백인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위험하고 박봉인 철도 노동자라는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살아남기 위해 이것을 받아들이면서 남부와 또 다른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열악한 작업 환경 보다 더 서글픈 것은 이들은 남부와 또 다른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갑자기 들이 닥친 흑인들의 문화에 대해 전혀 이해가 부족한 북부의 백인들은 얼마 전까지 남아프리카 일부에서 있었던 인종 분리 정책을 실시해서 식당이나 버스같은 곳에 흑인 백인의 좌석을 구분하며 차별을 했다.
크리스챤 국가인 미국에서 흑인을 노예로 만들어 갖은 학대를 다 한 백인들은 그들 선조들의 잘못을 조금도 반성하지 못하고 선조들이 해오던 비크리스챤적인 악행을 계속한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개신교도들 , 특히 영국 개신교도들의 이민으로 시작된 나라이기에 WASP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백인 신교도의 나라이나 예배때 마다 반복하는 회개의 복음보다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공적으로 차별하는 위선을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보이고 있다.
이런 고통의 연속인 삶에서 흑인들의 유일한 위안처는 바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교회였다.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은 서로 형제라고 가르치는 백인들이 자기들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암담한 현실에서도 하느님만은 어떤 처지에서도 자기들을 사랑하신다는 믿음이있기에, 교회는 이들에게 지치고 실망한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교회에 모인 흑인들은 시편 23편을 외우며 기도할 때 마다 백인사회에서 받아야 했던 불안이 평화로, 슬픔이 기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며 고통의 연속인 삶의 현장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재충전할 수 있었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몸 뉘여 주시고 고이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돋아라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앞에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 하느님은 우리 힘 우리 숨는 곳 어려운 고비마다 항상 구해주셨기에,
설령 땅이 뒤흔들린단들 산들이 해심으로 빠져 들단들
우리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 (시편 46)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한 20년이 지나서야 백인과 흑인 사이에 아무런 벽이 없는 복음적 이상이 말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 1929- 1968)목사의 노력에 의해 실현되었다.
작가는 흑인 인권과 해방이라는 이 시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 작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하느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형제적 인간 관계가 차별이라는 비복음적인 것으로 왜곡된 현실에서 예술을 통해 이것을 지적하고 고발함으로서 미국 상황에 꼭 필요한 복음적 가치를 예술을 통해 표현했다는데 대단한 의미성이 있는 작가이다.
예술의 표현이 아름다움에만 안주하지 않고 진실 표현으로 나아가야 할 사명이 있다면 이 작가는 작품을 통해 복음을 선포한 작가였다.
이런 면에서 예술은 세상의 복음화에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작가는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