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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시작

by posted Nov 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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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평화가 시냇물처럼...

모든 성인대축일인 오늘,
한국의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뒷 산, 줄무덤 성지로 11시 미사를 드리려 갔다.
옆 능선으로 하여 40여분 걸려 등산을 하다 보면
성지가 나오는데,
오늘따라 바람이 심상치가 않아 손이 시려울 정도.

곱던 단풍들이 겨울 초일기에 들어
춥다고 아우성이고 참나무 잎들은 진작부터 바싹 말라
켜켜이 쌓여 서걱 소리를 내며 눈길 이상으로 미끄러웠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천흥리 저수지와 파아란 하늘은
매서운 삭풍엔 아랑곳없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마지막 가을을 보내는 한 편의 시를 뿌려놓은 것 같다.

어쩌면 그 옛날 병인박해 시절,
박해를 피해 이 깊은 산 속, 옹기종기 마을을 이뤄
오롯한 하느님 신앙만이 여기 신자들 삶의 희망이었으리...
그러다 어느날 매서운 삭풍처럼 불어닦친 치명의 칼바람에
누구는 목이, 뉘는 팔다리가... 추풍의 가을 낙옆처럼
피바람을 일으켰을 테니, 아이들의 울음 소리하며
심지어는 짖어대는 동네 개들까지도
하나 둘 미운 털 뽑듯이 모조리 없애버렸다지!!!
그 때의 참상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렇게 성거산 자락이 피바다를 이뤘었고
비로서 몇년 전에야 오랜 침묵을 깨고
순교 성인 성녀들의 왜침이 줄무덤 성지로 겨우 밝혀진 것.
이젠 조용히 세월의 뒤안길에
성거산 골짜기마다 새초롬히 야생화로 피어난 분들.

그 시절의 정황이 파노라마처럼 피어올라
뭉클해지는 가슴...
아, 11월의 시작은
날씨만큼이나 스산해지는...
그러나
모든 돌아가신 분들을 특별히 기억하는 <위령의 달>,
오늘 성거산 줄무덤 성지에서의 미사는
매 순간, 매일을 잘 갈무리하라는 성령의 깊은 뜻이려니...

먼저 가신 님들이여,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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