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온 것이지 와 있는 것은 아직 아니라는 뜻일까요?
때가 찼다는 말씀도 <이미>를 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거의 다 되었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아직 아니>라는 뜻일까요?
이에 대해서 우리 교회의 가르침은 하느님 나라는 <Already, but not yet>,
다시 말해서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라고 하고,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1)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것을 믿고 회개까지 한 사람에게는
'Hic et Nunc,'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고,
2)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는 믿지만 아직 회개치 않는 사람에게는
옆 마을까지는 왔지만 내 마을, 내 집까지는 아직 아니 온 것이며,
3)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건 멀리건 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
아니, 아예 온다는 것도 믿지 않고 그래서 회개는 더더욱 않으며,
그래서 그저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아예 없습니다.
오늘 루카복음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바리사이에게서 받은 주님께서는 언제, 곧 때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답을 동문서답 식으로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
여기서 하느님 나라는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는 표현이 특별합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왕국과 비교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 나라들은 우리의 눈에 분명하게 보이지요.
왕 또는 대통령이 있고, 신하나 관료들이 있습니다.
제도와 권력이 있고, 군대가 있습니다.
그 밑에 또는 그 위에 백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의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제도가 있고, 권력기구가 있는지 보이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지키는 군대도 보이지 않습니다.
미카엘과 천사들이 군대라면 천사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보이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들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우리들 가운데 있습니다.
허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들 가운데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느님이 계신 곳, 그곳이 어디건 하느님 나라이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하느님의 사랑이 있는 곳이 하느님 나라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 안에 있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있으며,
권력과 제도들 가운데 있지 않고 사랑 가운데 있고,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자, 그러니 이렇게 정리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언제 오느냐?
우리가 사랑을 할 때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디에 있느냐?
사랑이 있는 그곳에 있습니다.
Ubi Caritas et Amor, Deus ibi est.
애덕과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 보다 알고도 잘 안되는 것이
사랑 실천 아닌가 싶어 더 마음이 아프네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싫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어서 말입니다.
제 자신이 그러니 '나'와 인간 조건이 동일한 '너'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가슴이 멍먹해 지네요.
그렇습니다.
"Ubi Caritas et Amor, Deus ibi est.
애덕과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