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오늘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기도하기 위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한 번 청원을 드려서 안 되면 안 되는구나 낙심을 하고
더 이상 청원을 드리는 것을 포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 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서 안 들어주시기에 안 되는 것인지,
반대로 안 들어주신다고 제가 생각하기에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 안 들어주신다고 제가 포기하기에 안 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강의를 하기 위해 서울에 갔고 전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가는 중에 연세가 꽤 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도움을 청하시며 지나가시는데
도움을 드리려고 제가 지갑을 꺼내는 사이에 저를 지나쳐가시는 거였습니다.
분명 제가 지갑을 꺼내 도움을 드리려고 하였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도 당신을 돕지 않을 사람으로 생각하셨는가 봅니다.
우리는 이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그러 하셨던 것처럼
종종 하느님을 여느 인간들처럼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많은 낙심과 끊임없이 기도하지 못함은
내가 성실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나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내가 청하는 것이 나에게 진정 좋은 것이라면
그것을 꼭 주실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좋기만 하면 반드시 주십니다.
그러나 다만 가장 좋은 타이밍을 고려하실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할 때 지녀야 할 그 끊임없음은
우리의 악착같음과 우리의 끈질김만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 그 때까지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악착같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지칠 때까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 그때까지이며,
안 줄려는 분에게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주려는 분이 가장 좋은 때 주실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늘 떼를 쓰는 기도만 한다면
우리는 거저주시는 하느님의 은총 체험이 없는 떼쟁이가 되는 것이며
하느님은 떼 안 쓰면 안 주시는 분, 사랑이 없으신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면서 의구심을 표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떼쟁이입니까, 아니면 믿음의 사람입니까?
자식 속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느님께서 떼를 쓴다고 주실 분도 아니고
떼를 안 쓴다고 안 주실 분도 아니라는 말씀이시겠지요.
"청하여라. 너희에게 줄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라고 하신 분인데 말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그런 믿음으로 언젠가는 제가 꼭 필요할 때
주실 거라는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 열쇠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이 포기 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이 결정적인 물음에 솔직히 말해서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는 말씀을 하셨나 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