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다.’”
오늘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주님을 임금이시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마땅할까?
이것이 마치 어린 아이들이 서로 자기 아버지가 최고라고 얘기하니
나도 질세라 나의 아버지가 최고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요?
자기 아버지를 무시하는 요즘이니
이렇게 자기 아버지를 최고라고 여기는 것은 기특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비교를 거부하실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뜻에서 이 축일을 지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 임금으로 제시하며
이 세상 임금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이 축일을 지내고,
우리들도 이 나라의 백성답게 살라고 이 축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축일에는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통치자들에게 보내는 우리 교회의 메시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임금들이 되라는 강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임금이십니까?
예수께서는 세상의 가장 작은이들을 <내 형제>라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이라고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에제키엘 서의 하느님께서 <너희 내 양떼야>라고 하시며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사뭇 비교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루카복음의 예수님께서도 <너희 작은 양 떼야>라고 하시며
목자처럼 양떼들인 우리를 돌보시겠다고 하셨지만
오늘 마태오복음의 최후 만찬에서 우리를 <내 형제들>이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를 더 이상 당신의 양떼가 아니라 당신의 형제로 여기시겠다는 것이고,
반대로 당신은 우리와 같은 처지로 내려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돈으로 구제하는 왕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거지가 되시어 거지들을 <내 형제>라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여전히 당신의 도움이나 받는 거지의 처지인데
당신은 자선을 베푸는 자비하신 임금으로 계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
당신을 낮추심으로써 우리를 높이시는 그런 분이시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축일은 우리에게도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임금님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제로 여기시니
그 백성인 우리도 서로를 형제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당연히 그런 것을 가지고
뭐 새삼스럽게 얘기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조선 시대도 아니고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시대인데
위아래가 어디 있냐고, 모두가 형제가 아니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직원을 형제로 여기지 않는 고용주들이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귀천이 나뉘는 불평등 구조가 있습니다.
돈이 왕으로 군림하고 사람이 종으로 취급되는 그런 체제가 있습니다.
왕과 백성의 그 왕정과 군주제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권력자들은 권력으로 왕노릇 하고 힘없는 사람은 종노릇 합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에제키엘 서의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그리고 복음의 주님께서도 영광스런 옥좌에 앉아 민족들을 가르실 거라고,
형제를 형제로 대하지 않고
왕처럼 그들 위해 군림하는 자를 염소취급 하겠다고 오늘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