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오늘 복음에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성전을 정화하시고
거기서 가르치시는 주님께 무슨 권한으로 그리 하시는지 따집니다.
이들의 눈에는 갈릴래아 촌놈에 불과하고 젊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와서,
그것도 성전이 마치 자기 집인 양 설쳐대는 것이 가당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권한으로 그러는지, 누구에게서 그 권한을 받았는지 따집니다.
틀림없이 그들은 성전이 자기들의 것이고
또 자기들에게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마치 요즘 일부 잘못된 사제나 목사들이 교회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듯.
그러나 주님의 눈에는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집을 자기의 집으로 삼는,
그래서 거기서 돈이나 벌고, 신자들을 위에 군림하려는 날강도들입니다.
이들에 비해 주님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주님은 성전을 당신 아버지의 집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어린 예수를 다시 찾은 마리아가 나무랐을 때 어린 예수는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하셨지요.
그렇기에 성전은 또한 당신의 집이라고도 생각하셨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고 있구나.”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것은 마르코복음의 말씀입니다.
거기서 당신의 집은 또한 모든 민족들의 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성전은 사제들이나 교회 원로들의 집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집이요 주님의 집이며, 모든 이를 위한 집이며,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무엇을 사고팔고 할 수 없으며
교회를 사고팔고 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들이 교회를 사고파는데
그것을 주님께서 보시면 오늘도 크게 진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에 대해 권한을 따지는 것조차 크게 진노하실 겁니다.
주님의 눈에 교회 안에서 특권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대전을 떠나며 대전에 있는 동창신부들과 송별을 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많이 나눴는데 그중 한 친구가 자기는
군에 있을 때도 이등병이나 장성이나 똑같이 대했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그 친구가 가식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평소 그의 겸손을 제가 알고 있고, 그것이 제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는 정말 수도사제인 저보다 더 겸손합니다.
그가 모두를 다 똑같이 대하는 것도 바로 이 겸손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기에 아무도 무시하지 않고 모두를 존중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어제 그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어떠한지 성찰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