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연중 시기입니다.
인사이동 때문일까요?
연중 시기를 시작하는 느낌이 오랫동안의 축제를 끝낸 느낌이랄까,
어디 오랫동안 놀러갔다가 집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제겐 그렇습니다.
인시이동과 대림시기, 성탄시기와 연말연시, 이런 것이 겹치니
마음이랄까 정신이 은근히 들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 연중시기라고 하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입니다.
안정을 찾은 느낌도 있고요.
이런 저에 비해 주님께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어제 세례를 통해 공적으로 나타나신 주님께서
앞으로의 나의 삶은 이런 삶이 될 거라고 오늘 이렇게 공표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당신의 삶은 회개와 복음을 선포하시는 삶이라는 말씀이며,
그러니 우리의 삶도 회개와 복음을 믿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새로운 소임을 시작하고, 새로 연중시기를 시작하는 저의 삶도 이제는
한 편으로는 저 자신이 회개와 복음을 믿는 삶을 좀 더 열심히 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회개와 복음 선포의 삶을 적극 살아야 함을 느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주님 말씀대로 때가 찼음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회개해야 할 때가 아직 남았다고 생각지 않고,
지금이 바로 회개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가 전인적인 회개이어야 하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전인적 회개를 당장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시작조차 못할 수 있으니
적어도 작은 회개의 때는 찼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담뱃값도 올랐으니
담배를 끊어야 할 때가 찼다고 생각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담배를 끊고
회개를 하기 위한 한 수단과 방법으로 담배를 끊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복음을 믿는 삶도 시작해야 하는데
사실 회개를 시작했다면 복음도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는 것과 복음을 믿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복음을 믿지 않고 살아온 것이 회개치 못한 것이고,
복음을 믿지 않다가 복음을 믿기 시작한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는다, 또는 믿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볼 때 저를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복음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고 반신반의합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씀을 반신반의합니다.
이 말씀을 완전히 믿었다면, 다시 말해서 100% 믿었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난을 영적이건 물적이건 철저히 살 것이고,
참으로 하느님 나라를 소유한 행복을 철철 넘치게 살 것입니다.
그러니 반신반의하던 복음 믿기를
70% 복음 믿기 30% 못 믿기로 바꾸면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회개와 복음 믿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100% 복음 믿기 0% 못 믿기로 바꾸면
이것은 회개와 복음 믿기의 시작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진정 믿기 시작했다면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믿는 만큼 복음을 선포할 텐데, 이것도 거창하게 선포하려고 하면
아예 시작조차 못할 것이니 작은 선포부터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쉬운 방법 하나를 제가 여러분에게 제시하겠습니다.
요즘 대부분 스마트 폰을 가지고 계시고 카카오 톡인가 뭔가를 하시니
나의 자녀들에나 나의 가까운 이웃들과 친구들에게
복음과 강론들을 퍼 나르시는 것, 이것도 작지만 좋은 복음 선포 방법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 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 전제 되어야 사랑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종교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도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을 사랑을 알 수 없으니까요..
인간적으로라도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
신앙 이전에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성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신뢰로운 사람인가를.....
영적 성숙의 초석이 인간성숙이라면 저 부터 온전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는 새아침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