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지난 주일에 이어 이번 주도 주님의 첫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는 애깁니다.
그런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다가 오신 주님을 찾아가 뵙는 지난주와 달리
오늘은 주님께서 몸소 찾아오시어, 아니 지나가시다가 부르시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첫 제자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먹고사는 일에 충실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연중 제 3 주일 주제는 부르심의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 부르심이 회개에의 부르심, 복음을 믿는 삶에의 부르심이기에
회개를 하고, 복음을 믿고 선포하는 것에 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1독서는 요나 예언자와 니네베의 회개 얘기를 하고
오늘 복음은 ‘회개와 복음을 믿음’에 대한 얘기를 먼저 들려주며,
바로 지금 그 때가 왔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성공하는 사람은 때를 아는 사람이고
그 때를 미루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를 할 경우 성공하는 사람은
투자의 때를 정확히 알고 제 때에 투자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할 때라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이 바로 행복의 때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행복의 때를 뒤로 미루는 사람이 있습니까?
행복의 때를 뒤로 미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행복의 때를 뒤로 미루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음을 믿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고,
그래서 복음을 믿으라고 해도 나중에 믿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복음을 믿는 것이 행복이라는 걸 알고 즉시 믿기 시작한,
다시 말해 행복의 때를 뒤로 미루지 않은 사람들로 첫 제자를 꼽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 넷이 모두 곧바로 주님을 따릅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복음이 곧 행복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복음을 믿는 것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있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참으로 많습니다.
복음을 믿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도
복음을 믿는 것이 회개하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기에 순서적으로 회개가 먼저이고,
그리스도인의 회개란 세상 사람들의 회개와는 달리
복음을 믿지 않던 사람이 복음을 믿는 것이요,
비 복음적인 사람이 복음적인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이 회개가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전 것은 다 버리고, 전의 삶을 다 바꿔야 하기 때문이고,
오늘 바오로사도의 말씀처럼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회개를 곧바로 잘 실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그들인데 오늘 1독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 옷을 입었다.”
지금이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할 때라는 것을 믿고
곧바로 주님을 따르기 시작하는 사람은 오늘부터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