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코복음에서 마리아는 외면당하시는 존재입니다.
다른 복음들에서는 주님의 탄생과 유년기나 마지막 십자가의 길에
마리아의 모습이 조금 나오든 많이 나오든 어쨌든 나오는데
마르코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얘기할 때와
오늘 복음에서만 어머니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별로 좋은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붙잡으러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르코복음은 구원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신 어머니 마리아를
어찌 이렇게 외면을 하는 것일까요?
정말로 외면을 한 것일까요?
그것은 이렇게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를 일부러 외면하였다기보다는
예수님께 더욱 집중을 하였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 마리아를 무시하여 외면한 것이라기보다
구원자 예수님을 더 집중 조명(Highlight)한 거라는 얘깁니다.
이것을 보며 우리도 마르코복음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두 가지 방식으로 주님을 집중 조명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웃 사랑을 해야 하지만
아무리 사랑할지라도 우리의 눈길은 주님께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여러 존재들 중의 한 분이 아니라
나의 전부, 우리의 전부이시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주님은 여러 미스코리아 후보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나의 유일한 사랑인 아내와 같은 분이십니다.
제가 처음 성소를 생각할 때 하느님과 여자를 같이 놓고
하느님을 선택할까 여자를 선택할까 생각한 적이 잠깐 있었는데
제가 하느님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얼마나 무엄한 것인지
저는 얼마 안 가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과 한 여자를 같은 수준으로 놓은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아무리 여자를 사랑할지라도
하느님과 같은 비교의 대상으로 놓고 사랑치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은 숨고 주님을 드러냄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부족하여
하느님보다도 내가 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려고 하곤 합니다.
물론 우리 중에 내가 하느님보다 더 시선을 받아야지 하며
하느님과 경쟁하는 사람은 없지만 주님을 들어 높이지 않고
내가 사람들의 사랑과 칭찬을 받으려 하는 사람은 꽤 있지요.
그런데 그게 결과적으로 나는 드러내고 주님은 숨기는 것이 됩니다.
그제는 어떤 그룹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들 중의 한 분이
말끝마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주님께 영광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차츰 그룹의 모든 분들이 그렇게 하게 됐다는데 바로 이런 거죠.
헌데 오늘 복음을 보면
우리가 주님을 높여 드리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이 곧 당신의 어머니, 형제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분이십니까?
당신을 세상에 낳아주신 분이시고,
그 이전에 하느님의 뜻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신 분이 아니십니까?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어머니라는 것은 대단한 격려이면서 도전입니다.
이런 격려와 도전을 받는 우리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을 잘은 모르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듯이 혈육 앞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는 것 처럼 정실에 치우치지 않고 행동하기가
어려운 인간 조건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이라고 해서 다 사랑이 아니듯이 가족 안에서도 부모나 형제를 바라볼 때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한 사람은
마음의 눈을 뜨고 있어야.....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은 늘 도전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가려내야 한다는 긴장이 있어서요..
제가 넘 삶을 복잡하게 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진리는 간단한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