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아직도>라는 말이 마음에 콕 들어와 박힙니다.
우리는, 아니 저는 <아직도>의 존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는 주님의 말씀에 저는
‘그렇지요. 제게가 그렇게 대단한 줄 아였습니까?
저는 아직 믿음이 없지요.’라는 말이 즉시 튀어나왔습니다.
꾸지람 같은 주님 말씀에 토라져서 또는 뻔뻔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저의 믿음 없음을 마음으로부터 겸손히 인정하고 토로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는 아직도 믿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두려움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나에 대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열망이 있다는 표시이고,
아무리 믿음이 대단해도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컸으면 좋겠는데
그 열망만큼 아직 믿음이 크지 못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제가 가끔 웃음을 금치 못하면서도 기특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돼는 형제가 수도원에 들어온 지 1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분심잡념이 많고 기도가 잘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볼 때입니다.
몇 십 년이 된 저도 아직 분심잡념 많고 기도가 잘 안 되는데
이제 1년밖에 안 된 형제가 <아직도>라고 하니 가소롭기도 하지만
얼마나 기도를 잘하고프면 벌써 <아직도>라고 하나 기특하기도 합니다.
사실 기도할 마음도 없고 잘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아직도>라는 말은 과분하고 <아예>라는 말이 딱 어울리겠지요.
그러니 믿음이 아예 없는 사람보다 아직 없는 사람이 훨씬 낫습니다.
<아직도>는 간절한 바람, 꿈과 열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마땅히 도달해야 할 것에 아직 도달치 못한 자의 겸손한 표현입니다.
나의 바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바람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우리지요.
사실 우리의 믿음 아무리 커도 아직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꾸지람 들어도 쌀 정도로 두려움도 많고 믿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제자들처럼
그 겁나는 바닷길을 주님만 믿고 떠난 겁니다.
또는 오늘 히브리서의 아브라함처럼 하느님 말만 믿고 떠난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제자들이 거센 돌풍이 불 때 그것도 밤에 바다 같은 호수를 건너자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얼마나 두렵고 겁이 났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그것도 그 늙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때 얼마나 두렵고 겁이 났겠습니까?
특히 자기 외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믿었기에 떠난 것입니다.
믿지 않았으면, 전혀 믿지 않았으면
결코 떠나지 않았고, 아예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믿기에 제자들처럼 우리의 인생 여정을 시작했고,
지금도 그 거센 돌풍을 뚫고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센 풍랑을 만나면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빠집니다.
완전히 믿으면 두려움이 없을 텐데 우리 믿음 아직 완전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대단한 역설과 신비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두려움이 사실은 신적 두려움과 믿음의 마중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기적은 베드로 성인이 물위를 걸었던 것만이 기적은 아닐것 입니다.
오늘날의 기적은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향해
보이는 세상 것을 포기 하고 구도자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려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싶어 바라보는 눈길에 연민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글쌔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누가 누구를 연민으로 바라봐야 할지......
주제넘은 생각일 수 있지만요....
생각해 보면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요구는
차마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닐것입니다. 아니, 차라리 인간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믿음도 아니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도 아닐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불가능 앞에서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의 힘으로 하게 되는 것을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믿었기에 떠난 것입니다.
믿지 않았으면, 전혀 믿지 않았으면
결코 떠나지 않았고, 아예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지 못하는데, 신뢰할 수 없는데 어떻게 희망을 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사랑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할 수 있는 건 희망이 있기에 가능하고 희망이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 시대에 믿을 수 있는 사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기를
다짐하면서..........오늘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제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