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여행을 할 때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받아들이면 그곳에 머물되 한 집에 머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련두지 말고 깔끔하게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 중에 환영치 않거든 깔끔하게 떠나라는 것도 이해되고,
환영을 하면 그곳에 머물라는 것도 이해가 되는데
한 집에 머물라는 말씀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저의 과도한 해석인지 모르지만 정주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영성에 있어서 중요한 영성 중의 하나가 정주영성입니다.
유럽이 민족의 대이동으로 매우 혼란스러울 때 하느님께서는
베네딕도 성인의 정주영성을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셨지요.
정주영성은 본래 여기저기 떠돌지 말고 하느님 안에 정주하는 거지만
구체적으로는 한 공동체에 진득하니 머물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한 곳에 머물지라도 싫증내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한 공동체에 머물겠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많았지만 오늘날은 더더욱 많습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영혼 말입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은 행복하지만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은 불쌍하지요.
우리 수도 공동체 안에서도 그런 모습을 많이 봅니다.
누구 때문에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단체들 안에서도 그런 모습을 많이 봅니다.
누구와는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정주란 누구와 살아도 자유로운 사람,
누구와 살아도 하느님 안에 정주하는 행복한 사람,
누구와 살아도 하느님 때문에 평안한 사람의 <여기 머묾>입니다.
그런데 정주영성에서 정주란 꼭 장소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정주定住의 정定은 정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것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혼인의 짝을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지 않고
내가 좋아 택했다가 싫어지면 헤어져도 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생각하여
정해진 시간표를 내 입맛대로 바꾸려들지 않고,
정해진 소임을 싫으니 바꿔달라고 하지 않으며,
정해진 규칙, 곧 규정을 맘대로 흔들어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순례의 삶도 잘 살아야 합니다.
어디서나 정주하여 안정되게 살 수 있어야겠지만
정주가 안주가 되어 떠나야 함에도 못 떠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정주定住는 좋지만 안주安住는 안 되겠지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누구도 애착치 말 것이며
하느님의 뜻이라면 어는 곳도, 무슨 일도 집착치 말아야 합니다.
애착이나 집착을 발의 먼지로 여기며
탁탁 털고 떠나 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빌고 비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