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헤로데는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였다.”
오늘 독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분이시고,
누가 뭐라 하건 같은 분이신데 복음에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얘기합니다.
이는 나는 같은 나인데 사람마다 다르게 나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무서운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저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저를 따듯한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저를 사랑 많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월인천강月印千江, 곧 일천강의 달이라고 합니다.
달은 하나이지만 천 개의 강에 두루 비치고 다르게 비칩니다.
천강의 달이 다르다고 하여 달이 여럿인 것은 아니지요.
오늘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분이시고 예나 지금이나 같은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어디나 계시고 언제나 계시며 누구에게나 계시고
한분이 수천의 모습으로 나투시지만 그러나 같은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의 헤로데에게 예수님은 위협자이십니다.
더러운 영들에게 예수님은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분이시고,
자기를 괴롭히러 오시는 분이시듯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늘 위협자이십니다.
헤로디아와 같은 죄인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운 분이십니다.
사실 모든 죄인에게 예수님은 두려운 분이시지만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용서해주시는 분이 되고,
헤로디아와 같은 죄인에게는 죄를 들춰내는 분이 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스승이십니다.
복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스승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사람들 중에서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가는 길을 알려주고 깨달음을 주는 존재인 까닭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예언자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세례자 요한과 같고,
엘리야가 다시 왔거나 다른 예언자가 왔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의 주님이요, 구원자이신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을 뿐 아니라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는 주님이요 구원자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사도들이 말하는데 그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악령이나 더러운 영들도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봤지요.
그러나 자기들의 주님과 구원자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요.
그러므로 답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성찰하는 오늘입니다.
문득, 옛 대중가요 중에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뒤 돌아 보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는 그 시간, 그 장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시간을 되 돌릴 수도 손댈 수도 없는 절망감 앞에서....
저에게 예수님(하느님)은 과거를 묻지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단 제가 회개한다면....이것이 제가 예수님을 믿음과 희망으로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제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그렇다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손댈 수도 없지만.... 적어도 회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저에게 달려 있다는 걸
알아듣기 때문입니다.....물론 회개도 하느님의 은총이 주어져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는 이렇게 기도할 수 밖에 없네요...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고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