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지고 싶으냐?”
제 생각에 요즘 많은 사람이 건강 중독증에 걸린 것 같고,
건강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건강 중독과 건강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건강을 잃는 것이지요.
상당한 아이러니입니다.
건강 중독이나 스트레스란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술 중독이 술이 뇌리에서 늘 떠나지 않는 것처럼
건강에 대해서 생각지 않는 날이 없고 늘 건강! 건강! 하며 삽니다.
술 중독이 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술에 의존하는 것처럼
건강에 대한 염려가 지나치고 건강하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강 중독이나 스트레스가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을 해칩니다.
지금 당뇨 수치가 100일 때 건강 스트레스가 있으면 200이 됩니다.
간염 수치가 100일 때 그것을 스트레스 없이 받아들이면
100 그대로일 텐데 스트레스가 있으면 그 스트레스만큼 수치가 올라갑니다.
아니 건강 스트레스가 있으면 없는 병도 생기거나 새로운 병을 만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라는 마음의 병이 육체를 망가뜨릴 뿐 아니라
정신도 망가뜨리고 영혼도 망가뜨립니다.
육신이 망가지고 아픈 것은 그저 고통일 뿐인데
정신과 영혼이 망가지고 아프게 되면 불행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히 수도자들은 <건강 가난>을 살아야 합니다.
건강 가난이란 무슨 뜻입니까?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요?
쉽게 말하면 건강에 있어서 가난하자는 것이지요.
더 건강해지려고 욕심 부리지 말자는 것이며
건강하지 않은 것을 그러려니 하자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도 그랬고 글라라는 일생 병을 달고 살았는데 두 분 다
다른 사람이 아프면 마치 자기가 아플 때 누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잘 보살펴주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아플 때는
병에서 낫기를 지나치게 안달하지 말라고 하였지요.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가 있듯이
건강에 가난함으로써 오히려 정신과 영혼이 건강해지고,
그럼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얻으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께서 건강하냐고 물으실 때
우리는 “예, 건강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하지만
그것은 육신의 건강 못지않게 아니 육신의 건강보다도 더
정신과 영혼의 병이 없는 그런 건강 주십사고 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도 오늘 복음의 병자처럼 38년이나 고질병을 앓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신과 영혼의 고질병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물줄기를 차단한 데서 오는 병입니다.
생명의 물줄기가 차단되면 건강을 잃게 되고 마침내 죽게 되는데
우리는 생명의 물이 아니라 이 세상의 오염된 물을 마시며 살아왔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살게 하는 물을 주님께 청했듯이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생명의 물을 청하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 사순시기에 이루어야 할 회개가 아닐까요?
영적 이상은 높게 갖어야 한다는 말이 기억나네요.
육신의 고통에 임하는 태도나 견딤은 정신과 영혼에서 오는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순교자들이 육신의 고통에 의연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말입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면서 솔직한 속 마음은 " 아 ~얼마나 아플까..!
저에게만은 이런 고통을 면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제 자신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원인모를 병 앞에서 취하는
정신과 영혼의 상태는 저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약한 존재이기에 육신의 고통을 원치는 않지만 육신의 고통을 넘어서는
강인한 정신과 영혼을 지닐 수 있도록
"사마리아 여인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살게 하는 물을 주님께 청했듯이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생명의 물을 청하"는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