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오늘 지혜서의 말씀은 참으로 심오합니다.
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말해
악의 한 귀퉁이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데
악이란 눈을 멀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악이란 선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선과 다른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육적이건 영적이건 눈이 있고,
눈이 있기에 볼 수가 있으며
우리의 눈앞에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고
선한 존재들이 있고 존재들의 선이 있는데
악이란 선한 존재를 보지 못하게 눈을 멀게 하고
그래서 존재의 선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이란 선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보지 못한 바로 그것이며,
선하신 하느님을 보지 못한 것이고, 하느님의 선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갖가지 악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둠은 없습니다.
우리 눈앞에 빛이 있는데 그 빛을 못 보는 것이 어둠이며
빛을 못 보고 어둠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하느님은 빛이시고,
그리스도가 그 빛을 보게 하는 우리의 빛이신데
악이란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있게 하는 겁니다.
지옥이란 없습니다.
우리 바로 눈앞에 천당이 있는데 그 천당을 못 보는 것이 지옥이며
천당을 못 보고 지옥만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악입니다.
불행도 없고 불운도 없습니다.
우리 바로 눈앞에 행복이 있는데 그 행복을 못 보는 것이 불행이며
행복을 못 보고 불행과 불운만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악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들도 있습니다.
신비를 못 보게 하는 악들입니다.
우리 바로 눈앞에 하느님이 계시고 신비들이 있으며
그리고 눈도 멀쩡한데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악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욕심이라는 악과 교만이라는 악이 있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우리는 욕심내는 것 외에 아무 것 못 보고
교만으로 눈에 뵈는 게 없어 자기 외에 아무 것도 못 봅니다.
재물이 나쁜 것 아니지만 재물 욕심 때문에 하느님을 못 봐
재물도 악으로 만드는 악이 욕심입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나는 물론 악이 아니고 하느님의 선이지만
자기밖에 못 보게 함으로 나를 악으로 만드는 악이 교만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은 현재의 것만이 아닙니다.
악은 미래에 받을 상급도 못 보게 합니다.
신비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욕심과 교만으로 멀었기에
육신의 눈으로 이 세상 것들만 볼 수 있고,
이 세상에서 받게 될 상급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미래에 하느님 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은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볼 수 없게 하는 이 교만과 욕심의 악을 우리 눈에서 닦아내는 것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회개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고 하지요.
예수님의 인격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는
만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낙원을 나올 수 밖에 없었던 ....
선악과를 따먹은 댓가로 운명적인 삶이 시작되었지만,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불행중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분별심을 늘 갈고 닦아
"볼 수 없게 하는 이 교만과 욕심의 악을 우리 눈에서 닦아내는 것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회개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