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대자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오늘 복음은 간음한 여자를 단죄하려는 무리와 예수님과의 실랑이 얘깁니다.
간음한 여자를 죽여야 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곤란한 질문을 받으신
주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이 땅에 뭔가를 쓰시기만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답을 몰라 끙끙거리시는 것일까요?
묘책을 찾기 위한 시간 벌기였을까요?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기 위한 것일까요?
긴장을 최고도로 끌어올리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까요?
철학에서는 에포케(epoche)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겨질 때
논쟁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일상의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판단을 중지하거나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을 살아가다보면
판단 중지.
대응 중지.
행동 중지 등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마치 해일처럼
갑자기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인 양 다가옵니다.
이렇게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로 커진 상황에서
이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고 우왕좌왕을 하다보면
문제는 더 커지고 마음은 더 조급해지면서
이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때 바로 에포케(판단, 행동중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얽힌 문제일 때
군중 심리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쏠리거나
이쪽저쪽으로 몰아가는 현상이 생기기도 하지요.
이때 누가 현명한 지도자라면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로 이 에포케(판단, 행동 중지)를 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께서도 바로 이 에포케를 하신 것일까요?
철학적으로 보면 충분히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그 이상의 이해를 해야겠지요.
다시 말해서 이것은 인간적으로 현명한 처신 이상의 신앙적인 행위입니다.
하느님의 시간을 위한 멈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바라실까,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 숙고하기 위해
인간의 모든 생각과 판단을 멈추고 모든 말과 대응을 침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좨치고 닦달을 해도
그런 사람들이 앞에 하나도 없는 듯 천연덕스럽게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거룩한 기도입니다.
행위의 기도이고 상황의 기도입니다.
얼마전에 리퍼트대사가 갑작스런 생명의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 "침착"을 반복하면서 그 위급한 상황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고
지혜롭게 대처했다는 것을 뉴스로 들었습니다.
문득, 생각과 행동 사이에 간격을 두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아마도 이 간격이.....
"인간적으로 현명한 처신 이상의 신앙적인 행위입니다.
하느님의 시간을 위한 멈춤입니다." 가 아닐까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