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다.”
어제 미사 중 강론에서 저희 형제가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어려서부터 당신의 신적 정체성을 갖지 않으셨다고 믿는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갓난아이 때부터 당신을 신이라고 생각지 않으셨고,
우리 보통의 인간이 그러하듯 그저 철부지 어린이였을 거라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당신의 신적 정체성을 깨달으셨을까요?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고 왜 태우게 했냐고 마리아가 나무라시자
당신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셨냐고 오히려 나무라시는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이 인간 부모의 자식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임을 알고 계셨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성부의 음성을 들으셨을 때일까요?
아무튼 이런 주제에 대한 의문과 주장들은 초 세기부터 있어왔고,
그래서 예수님은 본래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이단적 입양설까지 나오게 되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한 단정을 짓지 말아야 하지만
오늘 말씀에 비추어 우리도 주님처럼 신적 정체성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교리가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가르치는데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것이 겉모습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잖아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은 다 신이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만 이것은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구약 성서에 이미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은 하느님 말씀의 상대자이며
하느님 말씀의 상대자이면 신이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우리 인간도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생겨라’는 하느님의 말씀 한 마디에 의해 생겨난 존재에 불과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을 당신 대화의 상대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인간인데도 어떤 사람을 무시할 땐 말을 섞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묵살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 대화의 상대자로 삼으셨다는 것은
당신의 인격적 사랑의 상대로 삼으시고 존중하시는 것이며
당신의 말을 알아듣고 받아들일 존재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여기셨지만
우리 인간이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말씀을 하셔도 뭔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흘려버리곤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사랑으로 듣는 순간,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영적 지혜로 알아듣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순 시기,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 말씀의 상대로 이렇게 높이셨는데
우리는 그 하느님의 말씀을 너무 쉽게 묵살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며
매일 하는 우리의 사순시기 성무일도 초대송을 다시 한 번 되뇌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 무디게 가지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언제 당신의 신적 정체성을 깨달으셨을까요?...<---오늘 부산에서 강의하셨던 순간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