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좀체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을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불렀다고 하시는데
오늘 마지막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무슨 친구 관계가 명령을 합니까?
친구 관계인데 어찌 당신 계명 운운합니까?
그러니까 뻔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관계는 친구 관계가 아니고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본래는 주인과 종의 관계인데 예수님께서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아니 친구로 여기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친구 같은 아빠가 있지요.
옛날의 부자관계는 분명하게 아버지는 아버지, 아들은 아들이었는데
요즘 아버지들은 헷갈리게 친구 같은 아빠, 친구이면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친구 같은 아빠에게 있어서 본래의 주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친구가 주 정체성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지요.
내가 난 아이이니 나는 분명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주 정체성이지만
겸손한 사랑 때문에 그의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것이요,
나를 낮추고 너를 존귀하게 만들겠다는 사랑 의지가 서린 표현이지요.
우리 인간은, 인간 중에서도 미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가 천덕꾸러기로 만들고
천덕꾸러기로 만든 다음 같이 사느니 마느니 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그런데 나는 왕이 되고 싶고,
왕답게 품위 있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아무 하고나 결혼을 해서는 안 되고, 왕비와 결혼해야 하며,
만일 천한 여자라면 그를 왕비처럼 귀하게 만들어 결혼을 해야 하겠지요.
하느님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존귀하기 위해 당신 사랑의 상대인 우리 인간을
당신 모습대로 만드시고, 신으로 만드십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도 본래 종에 불과한 제자들을 당신 친구로 만드시고
친구이기에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게 하셨다고 하시면서
당신의 친구라면 친구답게 처신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친구답게 처신하는 것이란 어떤 것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 삼아주셨으니 기죽지 말고
주님과 너니 나니 하면서 친하게 지내면 되겠습니까?
결코 그래서는 아니 되겠지요.
우리는 주님을 주님으로 받들어 모셔야 하고,
주님의 계명을 받들어 실천해야 하겠지요.
그러면서도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친구로 삼으셨듯이 이웃,
특히 보잘 것 없는 이웃을 우리의 친구로 삼는 것이요,
주님께서 친구를 위해 당신 목숨을 바쳐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친구를 위해 목숨 바쳐 사랑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 존귀한 사람이라면
귀한 사랑을 받는 우리임을 자각하며
우리도 귀한 사랑을 하기로 다짐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뉘앙스는 달리 들리고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도 달리 들리지요.
아마도 명령이라는 단어도 듣는 사람의 경험에 따라 달리 들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최초의 경험이 어머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자녀에게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적일 만치 중요하다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양아버지는 주셨어도 어머니는 친어머니를 주셨습니다
그만큼 자녀에게 어머니는 중요해서가 아닌가....제 생각입니다.
오늘을 어버이 날 입니다.
특히 오늘의 어머니들에게 자긍심을 가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저녁 미사를 하고 나오면서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에게
카네이션 꽃대신 어머니날 선물로 미사예물을 봉헌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왜 그렇게 간절히 다가오던지요......
잘 기억은 않나지만, 독일 속담에 대충 내용은 이런 것 같습니다.
"네가 믿은 하느님이 어떤 하느님인가를 보면 네가 누구인가를 알겠다"
마치 자식이 옳지 않은 길로 잘못 들까봐 노심초사 명령으로라도 잡아
끌어주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 더 나아가 나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 나를 이렇게 까지 사랑하시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
그래서 저도 사랑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내가 진정 존귀한 사람이라면
귀한 사랑을 받는 우리임을 자각하며
우리도 귀한 사랑을 하기로 다짐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