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이 하느님께 대해 아는 것은
종종 소경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아는 것과 같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다리를 만진 소경은 코끼리가 기둥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의 말이 틀렸을까요?
저는 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감각으로 안 코끼리는 분명 기둥 같습니다.
그러니 그의 감각으로 안 것은 잘못 안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만일 그것이 코끼리의 전부라고 고집하면 그건 틀린 거지요.
그러므로 겸손한 소경이라면 이렇게 얘기할 것입니다.
나는 코끼리를 안다.
그렇지만 나는 코끼리의 일부만을 알기에 모르는 게 더 많다.
내가 일부만 아는 코끼리의 다리만도 이렇게 대단한데
코끼리 전체는 얼마나 대단할지 미루어 알뿐이다.
그래서 나는 코끼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 모르지만
코끼리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믿으며
또한 모르기에 나는 믿는다.
그렇습니다.
믿는 것은 모르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아는 것으로 끝나지 믿을 것까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을 일부 알고, 일부를 경험으로 압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그것을 다 알 수 없지만
조금 맛본 것만으로도 너무 좋기에 우리는 프란치스코처럼
“당신은 모든 선, 지상 선, 완전한 선, 충만한 선”이라고 믿습니다.
이상이 제가 오늘 사도행전을 읽고 묵상한 내용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의 그 유명한 아레오파고스 연설인데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연설을 시작하지요.
“내가 돌아다니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나는 선포하려고 합니다.”
진정 하느님은 우리가 알다가도 모를 존재이고
너무 크시어서 우리는 그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고 살아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