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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감동적인 하느님 체험을 하지 못하는가?

by 김요셉 posted Dec 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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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감동적인 하느님 체험을 하지 못하는가?

기도 중에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적인 표현을 잘하는 이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나는 왜 저런 체험을 할 수 없는가?”, “나도 저렇게 깊이 하느님을 체험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집니다. 곧, 자신의 신앙을 그런 이의 신앙과 비교하여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른 달란트, 성향과 환경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감정이 발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다른 것(이성)이 발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 그것이 채워지기를 바란다면, 좀 그러하지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이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닐까요?


우리는 세속적 욕구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에게는 노력에 부합하는 열매가 따라옵니다. 그러면, 종교적 삶 역시 그러한가?
내가 사랑, 봉사, 희생 등의 덕행을 실천하면, 그만큼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가?
내가 기도를 많이 하면, 그만큼 하느님과의 관계는 깊어지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느님과의 진실한 만남에 사랑 실천, 봉사, 희생, 기도가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 희생 기도가 우리의 내면을 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것이 행위 자체에 머문다면 내면과의(주님의 영) 만남에 방해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내면의 좁은 길”(개인과 하느님과의 만남)을 바라보기가 두려워 우리는 “평범하고 넓은 길”(종교적 행위들)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 삶은 세속적 노력과 반대의 길을 가야합니다. 세속적 노력은 ‘나’를 내세우고 ‘나’를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소유를 통해, 나의 자질을 높이고, 나의 것을 많게 합니다.

종교적 삶은 ‘나’를 없애는 것, 죽이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들려오고 우리 마음을 채우실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닌 ‘나’를 확대시키는 종교적 행위들에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우리를 눈멀게 하여, 마치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인 양 착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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