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왕권신수설이라는 것이 있지요.
왕의 권한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 의해 대통령이 뽑히는 것,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권한이 나온다는 것과 반대되니
민주주의보다 더 신앙적인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역사를 보면 이것이 그렇게 신앙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그 권한을 주셨으니
겸손하게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맞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신앙적이지만
나는 하느님에게서 권한을 받았고 그래서 나의 권한은 신성하니
너희들은 나의 권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식으로 행사한다면
이것은 권한은 사람에게서 온다는 민주주의보다 사실 더 세속적입니다.
권한은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하면서
하느님은 무시하고 하느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권한을 사유화하고 권력을 공동선이 아니라 자기이익을 위해서 씁니다.
오늘 유대 지도자들이 꼭 그 짝입니다.
성전에 대한 권한이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전정화의 권한이 예수님께 있는지 시비를 겁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세례자 얘기를 빌어
대답도 피하시고 그들의 시비에 말려들지도 않으셨는데
성전정화의 권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당신에게만 권한이 있다고 하실까요?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권한이 없고 우리들도 권한이 없다고 하실까요?
그러실 리가 없으시지요.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당신의 아버지로만 독점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집을 당신의 집으로만 독점치 않으실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지요.
내 아버지의 집에는 너희가 머물 곳이 많다고.
당신이 먼저 가시는 것은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하늘 성전만이 아니라 이 지상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은 누구의 독점적인 장소가 아니고, 그리 돼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본당 신부의 독점적인 장소가 아니지요.
돈 있는 사람이나 간부들이 활개 치는 장소가 아니지요.
아무 힘없고 돈 없는 사람도 편히 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지요.
성전은 하느님의 공간이요, 진정 신적 민주주의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성전정화의 책임도 민주적으로 모두가 져야 합니다.
먼저 자기 성전에서 탐욕과 교만과 사악함과 같은 것들을 정화하고
공동체에서 시기질투와 경쟁심과 지배욕과 같은 것들을 정화해야 합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룰 때
권한은 반으로 줄이고 책임은 두 배로 늘리라고 저는 권고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주님처럼 사랑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은
자기의 권한은 반으로 줄이고 자기의 책임은 두 배로 늘리는 사람입니다.
권리는 반만 가지고 의무는 두 배로 질 것입니다.
이것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