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실제로 있었던 얘기인지 지어낸 얘기인지 모르지만
성 프란치스코와 관련한 일화 중에 아주 특별한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와 동료가 길을 가는데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마침 포도밭이 있어서 둘은 거침없이 들어가 포도를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나타나자 동료 맛세오는 잽싸게 도망쳐 붙잡히지 않았지만
일부로 그랬는지 둔해서 그랬는지
프란치스코는 붙잡혀 주인에게 많이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 내내 프란치스코는 그 일에 대해 농담을 했습니다.
“맛세오 형제는 잘 먹었네. 프란치스코는 잘 두들겨 맞았네.”
프란치스코의 가난과 자유가 잘 드러나는 일화입니다.
사랑과 자유 안에서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고통을 즐깁니다.
이런 가난은 참으로 차원이 높은 가난입니다.
만일 프란치스코가 남의 것을 따먹다가 걸려서 얻어맞은 거라면
그것은 범죄행위의 발각이니 이렇게 유쾌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이고 포도밭의 포도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남의 것을 따먹은 게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먹은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전에 모든 과일을 맘껏 따먹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에게도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누군가 더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것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줄 것이 없으면 수도원에 하나밖에 없는 성경까지 주면서
“성서에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쓰여 있으니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프란치스코는 포도밭 주인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지만
그러나 포도밭 주인은 포도밭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맞습니다.
오늘 복음 묵상을 하며 왜 이 얘기를 길게 했는가 하면
오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속뜻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정말 황제의 것과 주님의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셨을까요?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만 황제가 그리 생각하고 우리 인간이 그리 생각할 뿐이지요.
그런데 하느님의 것이 아닌 자기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바로 세속주의이고, 세속이 세상과 다른 것도 바로 이점입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것과 황제의 것이 따로 있는 것인 양 생각하며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올무와 덫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들의 덫에 걸리지 않고 멋진 대답을 하자
“그들은 매우 감탄하였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무엇을 가지고 감탄하였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의 속뜻을 알고서 감탄하였을까요,
아니면 자기들의 그 교묘한 덫에 걸리지 않는다는 차원,
다시 말해서 자기들보다 한 수 위라는 차원에서 감탄하였을까요?
아무튼 오늘 복음은 여러 면에서 우리를 숙고케 합니다.
나는 주님의 이 말씀을 어떤 면에서 감탄하고 있는지.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교회가 정치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논거로 삼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여 교회의 사회문제 참여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