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달간 저는 최북단에서 남단까지 중국을 두루 돌아봤습니다.
그때 느낀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렇게 큰 나라를 하나로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구나!
55개의 소수민족이 있고 여러 언어가 있는데도 하나를 이루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우리나라, 우리민족을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한 반도의 작은 나라인데도 갈라져 있고,
더욱이 한 민족, 한 언어인데도 갈라져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중국선교를 위해서인데
정작 북한선교는 답보 상태에 있는데 중국선교를 추진한다는 것이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치밀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은 그렇게 큰 나라인데도 한 나라를 유지하는데
우리는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갈라져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갈라진 것은 외세에 의한 분단인 것이 분명하지만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려던 권력가들과
그런 권력가의 놀음에 속아 넘어간 우리 국민의 탓도 크고
그것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은 누구에게 돌릴 수 없는 우리의 탓입니다.
그렇습니다. 중국이 과거에는 어땠었고 앞으로 어떨지 모르지만
지난 세기부터 현재는 하나를 이루고자 하는 그 염원念願과 원력願力이
지도자로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강하기 때문에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통일을 염원합니까?
북한의 복음화를 얼마나 염원합니까?
원한다면 그 원하는 힘이 얼마나 큽니까?
통계에 의하면 퉁일을 원하는 우리 국민이 점점 줄어든다는데
통일비용이나 통일에 따르는 혼란 때문에 그러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일부 우리 지도자들이 국민을 잘못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분단에 따르는 군사적 지출과 불안에 비하면
통일 비용과 통일에 따르는 혼란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분단이 고착화되고 남북이 서로 적대시할 때
이익을 보는 외세와 남북의 일부 잘못된 지도자들의 놀음에
더 이상 속지 말고 통일의 염원을 키워가야 하고,
그리고 이 일에 누구보다 우리 신앙인들이 앞장 서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신앙인들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앙의 자유가 없는 북녘의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북녘의 복음화는 진정 우리가 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하며
다른 나라 교회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니 그러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와줘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민족에게는 퍼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지금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우리 교회가
정작 북한에는 선교사를 파견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해 정말 마음으로부터 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활동, 곧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활동과 선교활동은
진정 기도로부터 시작되고, 기도로부터 힘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동서독이 통일되기까지 44년을 서독의 개신교와 천주교가
매 주 기도회를 흔들림 없이 꾸준히 열었던 것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 계시겠다고 하셨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