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물리적으로는 눈 가까이 있는 것이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입니다.
그리고 큰 것이 작은 것은 가려도
작은 것이 큰 것을 가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의 티는 본다는
오늘 주님의 말씀은 육신의 눈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눈에는 종종 불가능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무엇에 욕심이 생기고
그래서 그것에 집착을 하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아무리 작아도 그 것이 나의 눈을 가려 다른 것을 못 보게 합니다.
욕심과 집착의 눈은 욕심내고 집착하는 것을 잡아당겨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지는 못하지만 Zoom-in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마음의 눈에는 비슷한 또 다른 현상도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잡아당겨 가까이 보고(Zoom-in)
나의 잘못은 밀어내어 멀리 보는 것(Zoom-out)입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나의 잘못의 경우는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멀리보거나 아예 나의 눈앞에서 없애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신 다른 사람의 잘못은 가까이보고 키워봅니다.
그래야지 나의 잘못이 다른 사람의 잘못에 가리거나
나의 잘못이 다른 사람의 잘못보다 작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선 돌리기.
시선 가리기.
그렇습니다.
눈 가리고 아옹!
우리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공작을 합니다.
나의 죄를 보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
다른 사람의 죄로 우리의 눈길을 돌립니다.
나의 악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워
다른 사람의 악으로 나의 악을 가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다른 사람의 악이 작고 내 악이 크면
나의 악을 작게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악을 키우기까지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집단처형 하려던 것이 좋은 예이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놓고 뒷얘기를 즐겨 하는 것도 좋은 예지요.
그 사람 없는 데서 흉보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누가 흉을 보면 은근슬쩍 편승을 하거나
같이 흉은 보지 않더라도 은근히 기분이 좋습니다.
아무 소리 하지 않았으니 나는 죄를 짓지 않았거나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니
적어도 내가 주범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그 자리에 있거나 그런 얘기를 하고 난 뒤에는
우리의 입맛이 마치 소태 씹은 듯 무지 쓰디쓰지요.
사심은 그런 나쁜 공작을 교묘히 하였지만
양심은 그 사악함과 교묘함을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니 마음 아파도 숫제 나의 죄악을 보고 제거하기로 오늘은 마음먹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