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으면서 한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그 귀한 씨를 좋은 땅에 뿌리지 않고
길바닥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과 같이 뿌리지 말아야 할 곳에도 뿌리나?
씨 뿌리는 사람이 좋은 땅 나쁜 땅을 가릴 줄도 모르나?
농부가 되어 씨를 귀히 여기지 않고 쓰레기처럼 버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분명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주는 것과 같지요.
돼지는 진주를 목에 차지 않고 짓밟고 말 것입니다.
진주를 목에 걸고 다니는 돼지를 보신 적 없으시죠?
길바닥에 뿌려진 씨는 바로 이 격입니다.
하느님의 그 귀한 말씀을 우리는 돼지처럼 발로 짓밟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길바닥에 쓰레기처럼 떨어져있는 종이쪼가리조차
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하기 때문에 정성껏 줍곤 했는데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도 마음에 간직하지 않습니다.
길바닥에 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을 좋은 땅에만 뿌리지 않고
안 좋은 땅에도 뿌리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특히 저에게
여간 위안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감사하게 됩니다.
좋은 땅 나쁜 땅을 가리지 않고 뿌리시는 그 덕분에
하느님의 그 귀한 말씀이 안 좋은 땅인 저에게도 떨어지는 거잖아요?!
사실 저는 하느님 말씀을 그리 무시하면서도
‘너 같이 말을 듣지 않는 놈에게는 아무 말도 내리지 않겠다.’고
하느님께서 제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매우 속상할 것이고 불행할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에서 제외된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속상하고, 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러고 보니 이렇게 당신의 말씀에서 저만 제외되는 것은 싫어하면서도
저는 하느님의 그 사랑의 말씀을 그동안 너무도 무시해왔습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어머니께서 이러저러한 말씀 하시면 속으로,
‘잔소리 좀 하지 마세요.’
‘쓸 데 없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듣기 싫은 소리 좀 하지 마세요.’ 하며 무례한 말 참 많이 했는데
하느님께는 이런 말 훨씬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당신 말씀을 무시하는 무례한 저에게도
말씀을 계속 내리시는 그 안에서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
들을 때까지 말씀하시고,
알아들을 때까지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말입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에 비해 저의 사랑은 형편없기에 너무도 죄송하지만
그래도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에서 저를 제외하면 싫어하는 저에게서
그나마 위안을 찾으며 차츰 좋은 밭으로 만들어 가리라 다짐해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
그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기까지 사랑한 십자가의 사랑일 것입니다.
늘 제 자신의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포기해?..... 말어?.... 라는 유혹 앞에서 괴로워 하지요.
사랑에 포기는 없다는 것... 죽기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포기를 모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다시 한번 배우는 이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