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5.08.23 17:36

연중 제21주일

조회 수 538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은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고, 모든 사람과 똑같이 좋은 관계를 맺기 힘듭니다. 인간이 한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의 가장 큰 것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하지만, 고통을 없애지는 못해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노력에 또한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인간의 죽음은 인간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간의 마지막, 최종적 한계점입니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그 사실 때문에 죽음은 또한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살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조금 더 연장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결국 인간은 마지막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한한 생명을 영원하게 만들려면, 우리의 유한한 생명이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또 다른 생명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면, 그 생명을 통해서 조금 더 한계를 넓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몸에 좋다는 것들을 먹고 명상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 또한 한계가 있는 것들이기에 아무리 몸에 좋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의 생명을 무한하게, 영원하게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명을 영원하게 만들려면, 영원한 그 무엇을 내 안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과 하나가 되어야 우리도 그 영원한 생명을 통해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창조의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은 신약에 와서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창조의 순간에 생명을 나누어 주신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거듭 주실 수 있고,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하는 그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영원한 삶의 방식과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식은 죽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인간은 죽기 때문입니다.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숨쉬고 움직이는 것을 살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물론 그 표현이 맞지만, 그 표현이 살아감을 나타내는 표현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삶이 기쁘고 행복하지 않을 때, 숨쉬고 움직이면서도 죽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말에 그러한 것을 산송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숨쉬고 움직이는 것에 덧붙여 기쁘고 행복함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삶의 순간 순간 고통 때문에 기쁘지 않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고 해서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면서 고통을 견디어 갈 인내와 힘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한 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고통의 순간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뜻은 하느님과 함께 함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은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하나됨은 우리가 죽어도, 우리의 유한한 생명이 한계에 도달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갈 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과 더욱 하나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야기 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과 하나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자주 미사에 참례해서 성체를 모시고, 자주 하느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더욱 일치하고, 마침내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8Mar

    사순 5주 금요일-나는 나를 누구라고 자처하는가?

    어제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라고 질문한 사람들이 오늘은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라고 아주 나쁜 사람, 신성모독자로 주님을 몰아세웁니다.   자처란 무엇입니까?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기를 어떤 사람...
    Date2016.03.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684
    Read More
  2. No Image 17Mar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우리가 아는 논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결국 죽게 됩니다.  그 논리는 어제 오늘의 논리가 아니기에  유다인들 역시 그 논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
    Date2016.03.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37
    Read More
  3. No Image 17Mar

    사순 5주 목요일-신비적으로도 알고, 경험적으로도 안다.

    “당신은 누구라고 자처하는 것이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신지 밝히라고 이렇게 요구하자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한 다음, 그러니까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다음, 하느님을 아는 분이라고도 하십니다. “너희는 그분을 ...
    Date2016.03.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77
    Read More
  4. No Image 16Mar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세상은 점점 거짓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거짓된 것을 아무 의식 없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거짓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처...
    Date2016.03.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26
    Read More
  5. No Image 16Mar

    사순 5주 수요일-나의 자유는?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 하느님 말씀, 하느님 진리 안에서의 자...
    Date2016.03.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784
    Read More
  6. No Image 15Mar

    사순 5주 화요일-어느 형제의 강론

    평화를 빕니다.   작년에 학교에서 구약입문을 배우며 앤더슨의 구약성서의 이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내용 가운데 한권을 탈출기에 할애하고 있을 만큼 모세와 히브리인들의의 탈출사건은 구약 전체를 꿰뚫고 있으며 이스라...
    Date2016.03.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616
    Read More
  7. No Image 15Mar

    사순 5주 화요일-욕심을 신심으로 바꾸시는 하느님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오늘 우리가 들은 민수기는 조급함에 대해서 성찰케 합니다. 조급함은 죄일까? 아니면 그저 성격일 뿐일까? 조급한 성격이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그저 ...
    Date2016.03.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604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66 867 868 869 870 871 872 873 874 875 ... 1354 Next ›
/ 135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