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먼저 정중하게 답변을 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61년생입니다. 문체를 보면, 요한 형제님께서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사용하신 “선생”이란 호칭은 제게 과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이니, “형제”라 불러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요한 형제님의 답변에 대한 저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저희가 대화하고 있는 이 홈페이지는 공적인 자리입니다. 인터넷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설사 개인 홈페이지라 하더라도 공개된 이상, 공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한 형제님께서 글을 올리신 곳은 저희 수도회 한국 관구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저는, 공식적인 공개토론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공적인 자리에서도 마땅히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인터넷 사이트를 보면, 상식과 기본 예의 이하의 표현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복음적 수준에 이르지는 못할지언정, 기본 예의 이하의 표현들은 절제되고 삼가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한 형제님과의 이 대화는 지난 31일 “가회동 성당” 이름으로 올려진 글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 글에서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작은 형제회 한국 관구 수도회는 신앙에 절대 도움이 안되는 단체”라고 기록하셨고, 이후에 올려진 글들을 보면, 올바른 마음으로 시비를 가리는 토론의 자세라기보다 상대를 비난하고 무시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표현이 여러 번 나타났습니다. 일일이 다 지적할 필요가 없다고 보며, 요한 형제님께서 지니신 교양으로 충분히 판단을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저로 말미암아 저희 수도회는 물론이고, 수도자 성직자를 한꺼번에 매도하는 저주와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보면서 그분들께 참으로 죄송한 마음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 사과하시라는 요청이 절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적인 토론을 위해서, 그리고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위해서, 이 공적인 자리에서 빚어진 비복음적이고, 비상식적인 자세와 표현에 대해서도 이 공적인 공간의 독자들에게 먼저 정중한 사과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빚어진 이 공적인 상황에 대해서 먼저 공적으로 사과함으로써 매듭이 지어져야 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2) 저는 요한 형제님의 글의 표현 몇 개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예를 두 개 들었을 뿐입니다.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구차해서 생략했을 따름입니다. 5월 31일자 “가회동 성당” 이름으로 올려진 글들 이후의 글들에 스며 있는 감정들을 보십시오. 저는 기본 자세와 마음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무류성을 지니는 공의회 문헌을, 비록 일부라 해도, “쓰레기”로 여기는 마음은 교회에 대한 모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로는 토론을 할 수 없고, 오히려 상대방의 감정만 깊게 할 것이기에 이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저는 얼마든지 토론에 임할 마음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누구와도 토론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저보고 “신자들 앞에서 칼 라너 붙잡고 떠드니, 수준이 참 한참 아래”라고 하셨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비교적 늦게 수도원에 입회하여, 서울 신학교를 마치고, 7년 3개월 동안 이탈리아에서 영성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공부한 로마 안토니아눔은 교황청립 신학교로,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학위를 받았고, 논문 심사 위원들로부터 논문 전체의 출판을 허락받아, 지금은 출판 중에 있습니다. 잘 하지 못하는 이탈리아어이지만, 이탈리아어로 진행된 논문 공개 심사에서도 동양인으로서는 심사위원들과 토론을 잘 해냈습니다. 극찬을 받았습니다. 하물며 한글로 하는 토론, 상식이 통하는 토론이라면, 어떤 토론도 문제 없습니다.
요한 형제님께서 요구하시는 토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한 형제님을 최고의 토론자로 모시겠습니다. 요한 형제님께서도 저를 최고의 토론자로 대해주십시오. 지나친 요구입니까? 저는 요한 형제님과 함께 질 높은 논쟁을 통해 한국에서의 토론 문화를 한단계 높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신문 방송사를 초대하시겠다니, 좋습니다. 대신 토론 출연료를 충분히 지불하셔야 합니다. 저는 무책임하고 값싼 토론에는 응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무료로 토론에 응하지 않겠으며, 찔끔 주는 기백만원으로도 만족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정중히 사과하시고, 사과에 대한 보상 겸 출연료를 충분히 지불하십시오. 출연료는 제게 지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달란트로 토론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의 달란트에 지불하시는 것이고, 더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 지불하시는 것입니다. 충분한 출연료를 주신다면, 저희 수도회 신학생 교육비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4) 방송을 통한 공개토론은 지금 당장할 수 없음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칸 영성학교에서 이제 막 강의를 끝냈고, 6월에는 2박 3일 세미나를 주관해야 합니다. 그후 곧바로 논문 출판으로 로마에 가야 하고, 귀국 후에는 수녀원 피정 지도 등 일정이 줄줄이 내년 6월까지 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방송을 통한 공개 토론은 내년 7월쯤이나 가능합니다. 이렇게 기간을 멀리 잡는 이유는 절대로 공개 토론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현 교황님도 그렇고, 요한 바오로 2세도 그렇고, 정치적 발언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다른 추기경님, 주교님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이런 언급들을 로세르바토로 로마노 지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또 레오 13세가 발표하신 노동 헌장 이후 교황청에서 발표한 대사회 가르침 문헌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 여기에는 정치와 관련된 교회의 책임과 직무들도 수없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헌들을 찾아가며 토론을 하려면, 저에게 토론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기꺼이 준비하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5)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교회법 285조에서 규정하는 사제들의 정치 참여 금지는 “국가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공직”을 의미하고,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 따르면, “정치적 단체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좀더 넓게 적용하여, 사제들이 정치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금하는 것에로까지 이해할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해 저는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와 관련된 인간의 기본권이나 공동선에 대한 가르침까지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용기 있게 복음의 정신에 따라 인간의 기본권과 공동선을 옹호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 형제님께서는 제가 정치 참여를 하셨다고 해석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교회법도,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5월 31일 가회동 성당에서의 강론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저는 교회법에 저촉되는 정치 참여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깨끗합니다. 제 설명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교회법을 공부하신 신부님들께 여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제의 정치 참여 문제를 주제로 토론하자면 얼마든지 응할 수 있습니다. 저의 기본 입장은 교회 입장과 똑같습니다. 저는, 교회의 규정에 따라 사제들은 공직이나 정치적 단체에 가입해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으나, 정치와 관련된다 할지라도 인간의 기본권과 공동선에 저촉이 된다면, 사제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고유한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을 해보면 아시겠지만, 요한 형제님 입장과 제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들이 정치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까지 예언직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는 그리스도교적 사상과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차원에서 복음적으로 성숙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참여하는 정치적 차원도 복음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차원 안에 들어 있는 신학적 의미와 복음적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데, 이러한 해석과 이에 대한 가르침은 사제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직무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심화하기 위해 토론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6) 글을 마치면서, 그리고 토론에 응한다는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 저의 입장을 다시 확인해 드립니다. 저희 수도회에 대해서, 그리고 이 공적인 공간의 독자들에 대해서 공적으로 정중히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신사로서 신분을 떳떳히 밝히십시오. 사과하기에 앞서, 또 토론에 초대하기에 앞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기본 예의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머지 (2)번-(4)번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십시오. 그러면 토론의 수용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긴 글을 인내롭게 경청해 주신데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
저는 61년생입니다. 문체를 보면, 요한 형제님께서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사용하신 “선생”이란 호칭은 제게 과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이니, “형제”라 불러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요한 형제님의 답변에 대한 저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저희가 대화하고 있는 이 홈페이지는 공적인 자리입니다. 인터넷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설사 개인 홈페이지라 하더라도 공개된 이상, 공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한 형제님께서 글을 올리신 곳은 저희 수도회 한국 관구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저는, 공식적인 공개토론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공적인 자리에서도 마땅히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인터넷 사이트를 보면, 상식과 기본 예의 이하의 표현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복음적 수준에 이르지는 못할지언정, 기본 예의 이하의 표현들은 절제되고 삼가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한 형제님과의 이 대화는 지난 31일 “가회동 성당” 이름으로 올려진 글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 글에서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작은 형제회 한국 관구 수도회는 신앙에 절대 도움이 안되는 단체”라고 기록하셨고, 이후에 올려진 글들을 보면, 올바른 마음으로 시비를 가리는 토론의 자세라기보다 상대를 비난하고 무시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표현이 여러 번 나타났습니다. 일일이 다 지적할 필요가 없다고 보며, 요한 형제님께서 지니신 교양으로 충분히 판단을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저로 말미암아 저희 수도회는 물론이고, 수도자 성직자를 한꺼번에 매도하는 저주와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보면서 그분들께 참으로 죄송한 마음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 사과하시라는 요청이 절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적인 토론을 위해서, 그리고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위해서, 이 공적인 자리에서 빚어진 비복음적이고, 비상식적인 자세와 표현에 대해서도 이 공적인 공간의 독자들에게 먼저 정중한 사과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빚어진 이 공적인 상황에 대해서 먼저 공적으로 사과함으로써 매듭이 지어져야 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2) 저는 요한 형제님의 글의 표현 몇 개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예를 두 개 들었을 뿐입니다.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구차해서 생략했을 따름입니다. 5월 31일자 “가회동 성당” 이름으로 올려진 글들 이후의 글들에 스며 있는 감정들을 보십시오. 저는 기본 자세와 마음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무류성을 지니는 공의회 문헌을, 비록 일부라 해도, “쓰레기”로 여기는 마음은 교회에 대한 모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로는 토론을 할 수 없고, 오히려 상대방의 감정만 깊게 할 것이기에 이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저는 얼마든지 토론에 임할 마음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누구와도 토론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저보고 “신자들 앞에서 칼 라너 붙잡고 떠드니, 수준이 참 한참 아래”라고 하셨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비교적 늦게 수도원에 입회하여, 서울 신학교를 마치고, 7년 3개월 동안 이탈리아에서 영성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공부한 로마 안토니아눔은 교황청립 신학교로,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학위를 받았고, 논문 심사 위원들로부터 논문 전체의 출판을 허락받아, 지금은 출판 중에 있습니다. 잘 하지 못하는 이탈리아어이지만, 이탈리아어로 진행된 논문 공개 심사에서도 동양인으로서는 심사위원들과 토론을 잘 해냈습니다. 극찬을 받았습니다. 하물며 한글로 하는 토론, 상식이 통하는 토론이라면, 어떤 토론도 문제 없습니다.
요한 형제님께서 요구하시는 토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한 형제님을 최고의 토론자로 모시겠습니다. 요한 형제님께서도 저를 최고의 토론자로 대해주십시오. 지나친 요구입니까? 저는 요한 형제님과 함께 질 높은 논쟁을 통해 한국에서의 토론 문화를 한단계 높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신문 방송사를 초대하시겠다니, 좋습니다. 대신 토론 출연료를 충분히 지불하셔야 합니다. 저는 무책임하고 값싼 토론에는 응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무료로 토론에 응하지 않겠으며, 찔끔 주는 기백만원으로도 만족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정중히 사과하시고, 사과에 대한 보상 겸 출연료를 충분히 지불하십시오. 출연료는 제게 지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달란트로 토론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의 달란트에 지불하시는 것이고, 더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 지불하시는 것입니다. 충분한 출연료를 주신다면, 저희 수도회 신학생 교육비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4) 방송을 통한 공개토론은 지금 당장할 수 없음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칸 영성학교에서 이제 막 강의를 끝냈고, 6월에는 2박 3일 세미나를 주관해야 합니다. 그후 곧바로 논문 출판으로 로마에 가야 하고, 귀국 후에는 수녀원 피정 지도 등 일정이 줄줄이 내년 6월까지 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방송을 통한 공개 토론은 내년 7월쯤이나 가능합니다. 이렇게 기간을 멀리 잡는 이유는 절대로 공개 토론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현 교황님도 그렇고, 요한 바오로 2세도 그렇고, 정치적 발언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다른 추기경님, 주교님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이런 언급들을 로세르바토로 로마노 지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또 레오 13세가 발표하신 노동 헌장 이후 교황청에서 발표한 대사회 가르침 문헌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 여기에는 정치와 관련된 교회의 책임과 직무들도 수없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헌들을 찾아가며 토론을 하려면, 저에게 토론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기꺼이 준비하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5)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교회법 285조에서 규정하는 사제들의 정치 참여 금지는 “국가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공직”을 의미하고,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 따르면, “정치적 단체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좀더 넓게 적용하여, 사제들이 정치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금하는 것에로까지 이해할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해 저는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와 관련된 인간의 기본권이나 공동선에 대한 가르침까지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용기 있게 복음의 정신에 따라 인간의 기본권과 공동선을 옹호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 형제님께서는 제가 정치 참여를 하셨다고 해석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교회법도,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5월 31일 가회동 성당에서의 강론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저는 교회법에 저촉되는 정치 참여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깨끗합니다. 제 설명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교회법을 공부하신 신부님들께 여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제의 정치 참여 문제를 주제로 토론하자면 얼마든지 응할 수 있습니다. 저의 기본 입장은 교회 입장과 똑같습니다. 저는, 교회의 규정에 따라 사제들은 공직이나 정치적 단체에 가입해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으나, 정치와 관련된다 할지라도 인간의 기본권과 공동선에 저촉이 된다면, 사제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고유한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을 해보면 아시겠지만, 요한 형제님 입장과 제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들이 정치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까지 예언직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는 그리스도교적 사상과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차원에서 복음적으로 성숙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참여하는 정치적 차원도 복음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차원 안에 들어 있는 신학적 의미와 복음적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데, 이러한 해석과 이에 대한 가르침은 사제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직무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심화하기 위해 토론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6) 글을 마치면서, 그리고 토론에 응한다는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 저의 입장을 다시 확인해 드립니다. 저희 수도회에 대해서, 그리고 이 공적인 공간의 독자들에 대해서 공적으로 정중히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신사로서 신분을 떳떳히 밝히십시오. 사과하기에 앞서, 또 토론에 초대하기에 앞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기본 예의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머지 (2)번-(4)번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십시오. 그러면 토론의 수용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긴 글을 인내롭게 경청해 주신데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