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을 보면 “그렇게 하여라.”는 주님의 말씀이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자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고 답하신 겁니다.
다른 한 번은 이웃이 누구냐는 율법학자의 물음에 강도당한 이를 구해준
사마리아인 비유를 들려주신 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이 말씀은 네가 아는 것은 참으로 잘도 알고 있는데
아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실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아는 것에서 아는 것을 실천하기까지 단계를 생각해봤습니다.
첫 단계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첫째가는 계명이란 것을 아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랑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돈은 아니지만 안식일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 첫째가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도 훌륭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이 계명이긴 하지만 계명이기만 할 때 그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 없죠.
다시 말해서 사랑을 사랑하기에 사랑치 못하고 계명이기에 사랑하는 것은
억지춘향, 곧 억지로 사랑을 하려는 것이기에 진정한 사랑이 아닌 거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사랑을 할까요?
사랑을 하면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사랑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해서 남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면 자기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하면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도 역시 부족합니다.
사랑을 하면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에 사랑하려고 하지만
사랑을 할 수 없으면 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참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의지이며 그렇다고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능력, 힘이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많은 이가 여기에 걸립니다.
사랑코자 하나 사랑할 힘이 없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단계는 사랑의 힘을 키우는 것인데
문제는 이 사랑의 힘을 어떻게 키우느냐, 그것입니다.
제 생각에 사랑의 힘은 사랑을 하면서 키워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씨름과 같습니다.
씨름을 잘하려면 기술도 있어야 하고 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술도 힘도 씨름을 하면서 습득을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이론 공부한다고 기술이 습득되지 않고
힘은 더더욱 이론 공부만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술과 힘은 연습이든 실전이든 씨름을 하면서 습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먹지 않고 씨름만 열심히 하다가는 무리가 되어 어디 탈이 나지요.
그러므로 잘 먹어줘야 합니다. 곧 영양 보충을 잘 해줘야 합니다.
사랑도 씨름과 같아서 사랑과 씨름을 하다보면
사랑의 기술(arts of love)과 사랑의 힘(power of love)이 생기는데
의지만으로 마구잡이 사랑을 하면 무리가 되어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씨름 연습에 영양 보충이 따라야 하듯 사랑에도 영양이 보충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하는데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의 힘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이렇듯, 앎, 의지, 힘, 기도가 두루 필요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