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복음의 끝에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가장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실 거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악한 아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적대자들은 주님을
성령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악령의 하수인쯤으로 깎아내립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악령의 하수인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제 생각에 이들은 합리적인 의심자들일 수도 있지만
자기들이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는데 주님께서 자기들을 반대하시니
오히려 그런 주님을 악의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일 수도 있지요.
사실 국제정치나 인간관계에서 적대적인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특히 힘 있는 쪽에서 자기편에 서지 않는 상대를 왕왕 악으로 규정하지요.
부시가 미국 대통령일 때 북한과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보고
저는 소가 보고서 웃을 노릇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이 세계경찰 노릇을 하고 있는데
자기편에 서지 않고 맞서는 독재국가는 악이라고 규정하고
자기편에 서는 독재국가는 아무 소리 하지 않거나 오히려 지원하며,
이스라엘의 핵 개발과 소유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만 시비를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힘 있는 사람들은 세계나 국가 체제를 자기중심으로 만들어놓고
자기편에 서면 선이고 반대편에 서면 악으로 규정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나 개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라고 하시는
오늘 주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하신 말씀일까요?
예수님도 편 가르기를 하시면서
자기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하시는 것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지요. 주님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을 반대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당신의 성령을 반대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을 받으셨고
특히 루카복음의 시작에 고향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실 때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나에게 내리셨다.”는
부분을 읽으심으로써 당신이 성령을 받으셨음을 천명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나가 악령과 대적하고
성령으로 그 악령을 물리치셨으며 이후 공생활 내내 그러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을 받은 우리라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함으로써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힘, 곧 포용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악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파괴적입니다.
포용력이 없기에 자기와 다르거나 자기편에 서지 않으면
배척하거나 억압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주님은 길 잃고 흩어진 양떼를 모으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란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고, 우리 공동체도 그러하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주신 주님의 성령을 모신 자라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흩어진 영혼들을 하느님 중심으로 모아들일 것이고,
악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나와 다른 것은 모두 단죄하고 배척함으로
공동체를 흩어버리고 파괴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