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트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를 외치는 것입니다.”(8,14-5)
지난 토요일, 우리는 누가 우리를 구해주는지 봤고,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구해주신다는 것도 봤으며,
오늘, 주님의 성령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봅니다.
말하자면 구원의 내용으로서 구원받은 사람이 어찌되는지 보는 겁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녀란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바오로는 말합니다.
종살이의 영이란 악령이지 성령이 아닙니다.
잘 아시다시피 악령은 두려움을 이용하여 인간을 자기 종, 노예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악령의 덫이며
두려움을 지닌 사람은 악령의 먹잇감입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은 다양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상처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별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등.
이런 것들이 자기한테 닥칠까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인데
두려움이란 원치 않는 것, 싫어하는 것이며,
싫고 원치 않음이 웬만하지 않고 너무도 클 때 두려워하는 것이기에
그런 것들이 닥칠까봐 벽을 쌓아 방어하거나 아예 단절을 시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너무도 싫은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에 의해 우리의 안정(전)을 깨질까봐 불안해하는 것이며,
이런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벽을 쌓고 방어를 하고 차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강하고 굳건하다면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이런 것 때문에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런 것이 내게 닥치지 않도록 벽도 쌓지 않고, 방어나 차단도 않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짜 강해야 합니다.
벽을 쌓거나 방어하는 것은 약하기에 그러는 것이니
벽을 쌓을 필요도 방어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 강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힘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고 하였지요.
그리고 인간적인 사랑도 그런 힘이 있는데 성령의 사랑은
겁쟁이 사도들로 하여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게 했던 것처럼 더욱 더 그럴 힘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움의 종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대한 사랑 때문에도 두려움이 없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도 오늘, 성령의 힘으로
아무 두려움 없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