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 병자의 날>이다.
이날은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된다.
성모님께서는 1852년 2월 11일부터
루르드에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이 발현 첫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이날 교회는
병자들의 빠른 쾌유와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
또한 병자들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의료인도 함께 기억하며
그들이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병자들에게 실현할 수 있게 기도한다.
먼저 오늘
우리 주위에 있는 병자들을 떠올려 보자.
각종 질병이나 장애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이들과
또 그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
주님의 말씀처럼,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는 것이
바로 주님 자신을 위한 수고요 봉사임을 생각하자.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마태오 복음사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을
<사랑 실천>에 두고 있다.
얼마나 성당에 열심히 나갔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성서를 열심히 읽고 묵상했느냐가 아니다.
단 한가지,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성당에 열심히 나가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서를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것은
바로 사랑하기 위한 것이기에
꼭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사랑 때문에 당신의 독생성자까지 아낌없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신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작은 사랑이 되는 길밖에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과 재산, 지식에 등에 있어서는
공평하게 주지 않으셨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나누어 주셨다.
그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선택 방식은 공정하고 올바르다.
다른 능력으로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식별한다면
공정성에 문제가 있겠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식별한다면
그 누구도 불공정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능력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많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하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내어주면 된다.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이 사랑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만든다.
이 사순절은
더 많이 사랑해야 할 때이다.
더 나를 많이 내어놓아야 할 때이다.
귀찮아하지 말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예> 해야 할 때이다.
이날은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된다.
성모님께서는 1852년 2월 11일부터
루르드에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이 발현 첫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이날 교회는
병자들의 빠른 쾌유와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
또한 병자들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의료인도 함께 기억하며
그들이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병자들에게 실현할 수 있게 기도한다.
먼저 오늘
우리 주위에 있는 병자들을 떠올려 보자.
각종 질병이나 장애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이들과
또 그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
주님의 말씀처럼,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는 것이
바로 주님 자신을 위한 수고요 봉사임을 생각하자.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마태오 복음사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을
<사랑 실천>에 두고 있다.
얼마나 성당에 열심히 나갔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성서를 열심히 읽고 묵상했느냐가 아니다.
단 한가지,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성당에 열심히 나가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서를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것은
바로 사랑하기 위한 것이기에
꼭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사랑 때문에 당신의 독생성자까지 아낌없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신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작은 사랑이 되는 길밖에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과 재산, 지식에 등에 있어서는
공평하게 주지 않으셨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나누어 주셨다.
그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선택 방식은 공정하고 올바르다.
다른 능력으로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식별한다면
공정성에 문제가 있겠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식별한다면
그 누구도 불공정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능력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많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하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내어주면 된다.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이 사랑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만든다.
이 사순절은
더 많이 사랑해야 할 때이다.
더 나를 많이 내어놓아야 할 때이다.
귀찮아하지 말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예> 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사랑의 영역을 조금 넓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