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지혜서는 지혜 찬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무릇 모든 종교는 지혜를 중시하고 찬미합니다.
특히 불교는 깨달음을 중시하여 부처도 깨달은 자이고,
하여 어리석음이나 무지 또는 무명無明을 가장 경계하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지혜가 많은 것은 지식이 많은 것과 다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지식만 많이 쌓아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보물은 놔두고 쓰레기만 가득 쌓고 거기에 치여 살듯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하고 쓰레기 같은 지식에 치여 삽니다.
이에 비해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이 무엇이고, 자기는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며,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그 길을 알며,
그래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를 압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단순히 어리석음의 반대인 지혜가 아니고
행복의 능력, 곧 덕으로서의 지혜를 얘기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성령을 예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인격적입니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여기에서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고,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영원한 빛의 광채이시고,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반사하는 거울이시지요.
글라라 성녀는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에게 보낸 네 번째 편지에서
오늘의 지혜서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분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분은 영원한 영광의 광채이시고(히브 1,3),
영원한 빛의 광채며 티 없는 거울이십니다.
오 여왕이시여 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시오(지혜 7,26).”
그런가하면 지혜서의 다음 말씀은 성령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다.”(지혜 7,25)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지혜 7,27)
그러니까 이 지혜는 성령의 지혜, 영적인 지혜입니다.
덕으로서의 지혜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지혜, 영적인 지혜를 지녀야 우리는
하느님을 숨 쉬는 자가 되고,
하느님의 벗이 되고 예언자가 된다고 오늘 지혜서는 말합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 지혜에도 급이 있습니다.
얕은 사람, 약삭빠른 사람은 이익이 되는 사람을 바꿔가며 찾아가고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평생의 벗으로 삼는다고 하지만
영적인 지혜를 지닌 사람은 이런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 이상으로
하느님을 영원한 벗으로 삼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예언을 합니다.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지혜이신 성령을 모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성령의 지혜를 지니는,
그런 우리가 되고,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