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 해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새 해가 열렸다는 말을 해놓고
이것은 매우 비 신앙적인 언표라는 생각을 바로 하였습니다.
무릇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께서 또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주셨다.”고
그렇게 표현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기 암 환자이고 작년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였다면
틀림없이 생각지도 않은 새 해를 하느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 새 해를 저에게 다시 주심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미를 드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해란 하느님 없이 있는 것으로서
우리가 창문을 열듯이 열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열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진정 여닫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묵시록 3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거룩한 이, 진실한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7절)
아,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그렇다고 인정하고 믿습니까?
주님께서 닫으시면 아무도 열 자 없다고 믿습니까?
행복의 문, 구원의 문, 하늘의 문은 주님만 열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믿는지 안 믿는지는 우리가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불교신자처럼 자기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고 하고
세속인처럼 하느님이 아닌 다른 인간이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다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러면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실 저는 지난 한 달여 고민을 하였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소임이 너무 많은데 새 해에도 그대로 가야 하는지.
그래서 관구봉사자께 그 과중함을 벌써 말씀드렸지만
못하겠음을 조금 더 강하게 말씀드려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이 역시 하느님께서 새 해를 열어주신 것이니
인간적인 머리로 그것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올 한 해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여쭤야겠지요.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그러니까 축복을 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게 되지요? 말로만?
말로만 축복을 해주라는 말씀일까요?
말이라도 저주 대신 축복을 해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축복은
말로만의 축복이 아니라 존재의 축복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창세기 12장의 말씀은 의미심장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리시며 복이 될 거라 하십니다.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2)
우리말에 복덩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끼쳐 행복하게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 축일과 관련시키면
우리는 아브라함 정도가 아니라 마리아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복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존재가 되었지만
은총을 가득히 받아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신 마리아는
만복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낳아주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천주의 모친이신데
이름을 달리 하면 행복을 낳아주는 어머니, 행복의 모친이시지요.
우리도 올해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낳아주는 주님의 어머니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016년 새해 우리는 복덩이들이 됩시다.
2016년 새해 우리는 마리아들이 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