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논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결국 죽게 됩니다.
그 논리는 어제 오늘의 논리가 아니기에
유다인들 역시 그 논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면 이 말은 거짓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죽음"이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는 것,
우리가 사부로 모시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도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죽음은 육체적 죽음을 뛰어넘는 그 무엇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지키는 것은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할 따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심으로써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을 지킬 때,
우리는 예수님과 일치하게 되고,
그 말씀의 원천인 하느님과 일치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말을 지키면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비록 우리는 언젠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면,
죽음은 우리 삶의 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하나의 관문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프란치스코는 죽음의 순간에
죽음을 누이라 부르며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순 기간을 보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 각자의 죽음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살아간다면
죽음은 미지의 세례로 들어가는
불안감으로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시간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