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저의 경우는 제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인지,
하느님께서 저를 선택하신 것인지 분명치 않았습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신앙이 지금보다 더 부족했을 때는
제가 하느님을 선택하였다고,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제가 선택하고
여자와 가정이 아니라 하느님을 제가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느님을 선택했다는 말 틀린 말 아니고, 사실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지
하느님께서 저를 선택하신 것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제가 수도자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됐을 때 수도원을 떠났습니다.
제가 선택한 것이니 저의 선택을 제가 거둬도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수도원을 나가서 살면서
제가 얼마나 교만했는지 깨닫게 되었고,
교만이 깨지면서 내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황송하옵게도 저를 선택하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도원에 돌아왔고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흔들림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 비해서 그리고
지금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헷갈려하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서
바오로 사도의 경우는 아주 분명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주님을 박했는데 사도가 되었으니
자신이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사도로 선택하신 겁니다.
그러니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에 대해
우리보다 더 확고하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그리고 하느님의 선택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바오로 사도만큼 확고하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며,
그래서 성소에 대해 갈등하고 성소를 포기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님을 선택하지 않은 바오로 사도에게는
주님께서 믿음의 은총을 더 많이 주시고,
주님을 선택한 우리에게 외려 믿음의 은총을 덜 주셨다고 생각지 말 것이고,
사랑을 덜 주셨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게 더 많은 은총을 더 주신 것이 아니고
특별한 은총을 주신 것이며 그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사도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더 널리 전하라는 은총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더 널리 전하기 위해
더 많은 고난을 감수하라는 은총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바오로 사도를 당신이 선택한 그릇이라고 하시는데
그러니까 만일 바오로 사도의 그릇이 크다면 그것은
사명의 그릇이 큰 것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그릇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일이 더 많고 시련이 더 많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운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느님이 시련을 더 주신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의 사도로 뽑으신 거라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도로 뽑히어
주님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릇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릇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고난의 그릇이요
사랑의 그릇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