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역사란 어떤 때 매우 아이러니irony입니다.
이 아이러니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 사실 사이의 괴리”입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분열을 하고,
그 밖의 여러 이유들 때문에 여당이 압승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국민들의 선택은 그런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였습니다.
오만, 무능, 불통의 정부를 국민들이 심판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고,
이런 분석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정치적, 사회과학적으로만 분석하지 않고
신앙의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제가 얘기하고픈 것은 역사나 세상사가 사람들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고
하느님의 크신 뜻대로 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을 가졌을 때는 자기 힘으로
자기가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을 관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권력자들 마음대로 되지 않고 결국엔 하느님 뜻대로 된다는 겁니다.
이 정권이 잘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지만
그중 제일 잘못한 것이 언론이나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왜곡하려 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친일을 가리거나 합리화내지 정당화하고, 심지어 미화하기 위해
교과서까지 국정 교과서로 만들려고 하였는데
이것은 역사의 왜곡, 과거의 왜곡일 뿐 아니라 미래까지 왜곡하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역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런 시도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성공할 것 같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을 통해서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게 되고,
그래서 그들의 의도와 시도들이 억지임이 드러나곤 했지요.
그런데 역사를 보면 이와 정반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권력 있는 자들과 다른 약자들의 역사로서
죽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살게 되고,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잘 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요셉의 경우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죽을 지경까지 가다가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가는 그런 불행한 개인사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게 되는 민족의 구원사가 되었지요.
인간적인 개인사, 가족사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사가 된 겁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얘기도 바로 그러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박해로 흩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를 퍼트리고
마침내 안티오키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 것인데
참으로 아이러니가 이들의 씨를 말리려고 했던 유대 권력자들은
오히려 로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망할 뻔했던 이들은 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리스도교를 탄생시킵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역사입니다.
살판 난 양 설치던 권력자들은 죽고
죽어지내지만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이 결국엔 살게 되고, 승리하는 것.
그런데 그 부활이란
죽어지내던 자가 의기양양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패배자가 승리자로 군림하는 그런 승리가 아닙니다.
그는 당당하기는 하되 결코 의기양양하지 않고
여전히 죽어지내고, 실패를 밥 먹듯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하느님의 역사를 묵상하는 오늘입니다.